요기 다니엘 “한국에서 요가대학 만들고 싶다”
왕년에 유리상자 요가 등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요가쇼’로 이름을 날렸던 요기 다니엘(한국명 박영준, *요기는 요가의 명인). 중동 사람이 흔치않던 1979년 워커힐, 홀리데이 인에 공연하러 왔다가 한국생활에 매력을 느껴 귀화한 이란인이다. 이후 해외 공연, 방송 활동을 하다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간 요기 다니엘이 최근 한국으로 복귀해 활동을 재개했다.
서울 목동 핫요가코리아 공동원장과 케이블 엠넷 유세윤의 비디오아트 고정게스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11일 목동 학원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나
“라스베가스에서 공연기획 일을 했다. 한국에 호세펠리치아노 등 유명 해외가수를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어서 빨리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매주 화요일 엠넷 유세윤의 ‘비디오아트’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토크쇼와 코미디가 결합된 프로그램인데 연기를 하고 있다. 유세윤 씨는 NG를 내지만 나는 완벽하게 하고 있다.(웃음) 학원에서는 매일 한 시간씩 요가를 가르친다. YD엔터테인먼트사를 설립해 외국 예술인의 한국공연, 한국 가수들의 해외공연 등을 주선하기도 한다.”
-국내서는 극한의 동작을 취하는 요가의 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요가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결합시켰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자세를 많이 개발하게 됐다.”
-어떻게 그렇게 유연할 수 있나.
“어린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하루도 요가 수행을 쉰 적이 없다.”
-요가를 배우게 된 동기는.
“이란에서 6살 때 접했다. 아버지가 이란 왕조에서 중책을 맡고 계실 때 인도에서 마하리시 마헤쉬(Maharishi mahesh) 요기가 오셨는데, 아버지가 요가를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요가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하리시 요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옴명상법 등을 만든 분이다. 그 분에게 6년간 요가를 배웠다. 인도에 가서 2년간 배우기도 했다. 요가가 내 몸에 잘 맞았다.”
-요가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인도에서 이란으로 돌아와 방송 출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이란에서도 요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방송에 나와 주목을 끌면서 프랑스의 공연업체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그러면서 보여주기 위한 요가쇼도 개발하고 여러나라를 방문하게 됐다.”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됐는지.
“일본 NHK 방송에서 공연 후 한국 워커힐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1979년 한국에 와 워커힐, 홀리데이인을 비롯해 여러 방송국에 출연했다. 당시 홀리데이인 MC를 이덕화 씨가 맡고 있었다. 서세원, 김상희, 김흥국, 오미희 등 많은 한국 연예인과 친분이 있다.”
-돈도 많이 벌었겠다.
“그럭저럭. SBS개국 시절에는 자니윤과 MC도 봤다. 슈퍼휴먼(Super Human)이란 홍콩무협영화의 주인공도 맡았다. 쿵푸 6단이다.”
-외국인이라서 차별 받은 적은 없나.
“내 경우에는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중동인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그렇고. 모임이 있을 것 같은데.
“없다. 한국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인 친구들이 보고 싶어 왔다. 이젠 여기서 뼈를 묻을 생각이다.”
-고향(이란)은 언제 갔다 왔나.
“90년 중반에 갔다 왔으니까 10년이 훨씬 지났다. 그때도 너무 힘들었다. 왜 한국으로 귀화했냐 묻고 답변하는 통에 가는 곳마다 괴로웠다. 지금은 가족, 친척들이 보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못 갔다. 형님들이 한국에 온다.”
-가족은.
“아들, 딸이 있는데, 딸은 라스베가스에 엄마와 있다. 대학생이다. 아들은 한국에 있다.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뭘 하고 싶은가.
“한국에 요가대학을 설립하는 게 꿈이다. 미국 마이애미대에서 MBA 과정도 마쳤다.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분이 계신데 건물 짓는데도 많은 돈이 필요해 당장 하기는 어렵다. 여러 법적인 절차도 밟아야 하고. 내 모든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전수하고 떠나고 싶다.”
인터뷰를 하느라 점심을 못 먹은?요기 다니엘?씨는 냉면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다. 몸에 열이 많아 냉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제자가 운영하는 중국식당에서 그는 냉면을 먹고 기자는 짜장면을 먹었다. 그는 국물을 들이켠 후 “10년간 미국에 가 있는 바람에 방송 관계자와 연이 모두 끊겼다. 은퇴한 분들도 많더라. 방송을 통해 더 많은 한국인과 만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바람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