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갈과 이스마엘…”가정에서 추방된 문제가 인류사적 문제로 확장되다”
창세기 21장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
아브라함의 집안에 경사가 났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고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라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이삭을 낳고 진정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안의 경사가 하나도 기쁘지 않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입니다. 한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이자, 대를 이을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난 순간, 그들은 하루아침에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가족 공동체에서 추방당합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
하갈이 원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까? 하갈은 안주인의 말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황이 바뀌자 안주인의 마음도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추방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책임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사라는 문제를 책임지기보다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문제를 추방해버립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어졌을까요? 추방되었을지는 몰라도 문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정에서 추방된 문제가 인류사적 문제로 확장되고 말았습니다.
가정이란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가정에서 책임을 지면 집안 문제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책임지지 않으면 사회의 문제가 되고, 국가의 문제가 되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라가 자기의 여종과 그 아들을 끝까지 책임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마엘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불과 몇 년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 몇 년만이라도 잘 거두었다가 독립시켰다면 인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책임진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는 결국 그 화살을 하나님에게까지 돌리고 말았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다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만 것입니다.
책임만 잘 져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대단한 헌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한 영혼에 책임을 다하면 충분합니다. 예수님도 열두 명의 제자를 끝까지 챙기시다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