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5일]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36세 나이로 사망
2002년 미얀마 8888 항쟁을 낳았던 네윈 사망
2002년 12월5일 영국으로부터 버마를 독립시킨 유공자로서 독립 후 군 버마군 참모총장, 혁명 평의회 의장, 대통령,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 (BSPP) 의장을 지냈던 네윈(Ne Win, 1911년 출생)이 사망했다.
네윈의 본명은 슈 마웅(Shu Maung)이다. 1911년에 중국인의 피를 가진 버마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포기, 다니던 랑군 대학도 중퇴했다. 우체국원을 거쳐 ‘우리 버마인 연맹(도바마 협회, Dobama Asiayone, 혹은 타킨당)’에 가입했다.
1941년 2월 아웅 산(아웅산 수치의 아버지로, 버마 독립의 아버지)이 인솔하는 청년 활동가 그룹 ‘30인의 지사’의 한 명으로서 일본군에 의해 하이난 섬에서 혹독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12월에 방콕으로 이동해 버마 독립 의용군을 결성했다. 네윈은 국내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게릴라반의 반장으로서 1942년 1월에 일본군과 함께 버마로 진군했다. 그러나 일본의 패세가 분명해진 1945년 3월에 대일 반란을 일으켜 일본군을 공격했다.
1948년 버마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지만, 독립 직후부터 반란이 계속 됐다. 당시 국군최고 지휘관(국방장관)이었던 네윈은 정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1962년 쿠데타를 결행, 정권을 잡았다. 네윈은 버마의 독자적 사회주의 정책(버마식 사회주의)을 채택했고 혁명 평의회 의장을 거쳐 1974년부터 7년 뒤 사직할 때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다.
사직 후에도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 (BSPP) 의장을 맡아 국정을 주도했다. 이 기간에 버마는 외교에서는 엄정한 중립정책을 취해 주변 제국의 혼란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지만, 경제 정책에서는 완전히 실패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1988년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 민주화 시위(8888 항쟁)가 발생, 책임을 지고 당 의장을 사임했지만, 퇴임 연설에서조차 “군은 국민에게 총구를 향한다”는 말로 민주화 세력을 견제했다. 당 의장 사임 후에는 기존의 중립 외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을 비판했다.
1968, 국민교육헌장 발표
1968년 11월26일?국회 만장일치 동의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날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다.?이후 각 학교 교과서 첫머리에 인쇄되어 새마을운동과 함께 20여 년간 보급되었으나 독재정권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1994년 폐지됐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인상파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1926년 이날 세상을 떠났다. <인상 해돋이>라는?작품을 통해 ‘인상파’라는 이름이 생기게 됐다. 초기에는 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으나 점차 밝은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빛의 화가’로 알려진 그는 빛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색채표현 등으로 인상파 기법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후기에는 자택인 지베르니에 연못을 조성해 <수련>을 연작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지휘자이며 대한민국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가 1906년 이날 태어났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으며, 음악특기자로 일본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공부했다.?이후 미국으로 유학해?첼로와 지휘를 배웠고 한인교회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처음 유럽을 방문하여 베토벤의 음악을 배우고 지휘와 작곡 공부를 했으며 예전부터 착상해온 <애국가>를 작곡했다.?196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음악제를 주관했으며 런던필하모닉 등을 객원 지휘했다.
?영화업계와 오락산업 등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1901년 이날 태어났다. 그는 ‘미키 마우스’를 창조했으며, 1932년 최초의 삼원색 방식의 색채 영화인 <숲의 아침>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37년에는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백설공주>를 제작해 성공을 거뒀다. 이외에는 그는 만화영화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용 영화, 자연과학 영화 등 수많은 영화를 제작했다. 1955년 대규모 유원지인 ‘디즈니랜드’를 열었으며, 이후에도 전세계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영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1791년 <레퀴엠>을 미완성으로 남긴채 36세의 나이로?이날 세상을 떠났다.?그는 궁정음악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에게서 막내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미 5세 때 소품곡을 작곡했다. 또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함께 유럽 곳곳을 다니며 음악을 하게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한 결혼 이후 몇 년간은 그의 전성기로 오페라 뿐만 아니라 교향곡 등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최선화 수습기자?sun@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