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지평좌표계에 고정된 영적 현상

지평좌표계


스가랴 13장

“그 날이 오면, 어느 예언자라도, 자기가 예언자 행세를 하거나 계시를 본 것을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슥 13:4, 새번역)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환상이나 초자연적 계시, 예언과 같은 신령한 현상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기적같은 현상을 목격하거나 경험하게 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초자연적 현상도 자연적 시공간 안에서 경험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자연적 현상을 인지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초자연적 현상을 인지합니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만져지거나, 귀에 들리거나, 피부에 느껴지거나, 마음에 감동이 있거나,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거나 하는 등의 인식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영적 현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 현상이 순전하게 영적이기보다 자연적 실체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동안 내가 가진 가치관, 세계관, 사고의 습관, 내 과거의 경험, 지식, 내가 구사하는 언어의 체계, 나의 욕구와 욕망 등이 복합적으로 영적 경험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과정은 예언자라고 불리는 영적 경험을 전달하는 주체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따라서 영적 현상은 반드시 분별이 필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영적 현상은 없습니다. 예언자라도 욕심과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어떤 신령한 행위에도 인간적 불순물은 포함되기 마련입니다. 그 자체가 이미 해석된 현상이기에 반드시 분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칠 것이라고 합니다(고린도전서 13:8) 그것 자체가 완벽하거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신령한 체험을 많이 했지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얘기하는 것에는 극히 조심스러워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5)

정말 환상을 보거나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은 절대 자랑하듯 얘기할 수 없습니다.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계시를 왜곡하거나 제한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 13장 4-6절입니다.
그 날이 오면, 예언자들은 환상을 보고 예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속임수로 입던 털옷을 걸치지 못하고 “내가 어디 예언자입니까? 농사나 지어 먹는 사람입니다. 젊어서부터 밑천이라고는 땅밖에 없습니다.” 하고 변명하게 될 것이다. 누가 “네 가슴의 상처는 웬 것이냐?” 하고 물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대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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