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과학고 영재, 실력향상보다 정서안정이 더 중요”
최근 서울과학고 B군(10살)의 자퇴와 학폭 의혹 등을 둘러싸고 교육계 안팎과 SNS 등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의 부정확하고 앞서가는 보도도 문제해결보다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서울과학교의 한 학부모가 <아시아엔>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글이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제 문제들을 풀어가는 하나의 대안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B군의 서울과학고 자퇴 소식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에 대해 이 학교 학부모로서 안타까운 맘으로 몇가지 대안을 제시해 본다. B군의 자퇴 소식이 유튜브와 이어진 B군 선배 맘의 어이없는 이메일로 인해 B군의 아버지는 화가 났고 “이메일을 보낸 선배 맘을 협박죄로 경찰에 고발하겠다” “아들의 자퇴는 지속적인 학교폭력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올렸다. 이 유튜브 조회수는 50만이 넘었다.
이것을 처음 보도한 한 언론은 “괴롭힘에 27kg였던 체중 반 년만에 22kg”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B군 아버지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소제목으로는 “동급생들이 지속적인 언어 폭력” “학교 신고 후 학교 측 지속적 사건화 만류”를 달았다.
이 기사에는 2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그 대부분은 B군이 학교폭력을 당한 것에 분노하며 서울과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비난하는 글들이다. 우리나라는 안 된다며 미국으로 보냈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중의 B군에 대한 사랑과 기대는 지대하다.
서울과학고 학생들은 뛰어난 어린 애가 동급생이 되니까 시샘하여 못살게 군 나쁜 학생들로 치부되었고, 그들은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애들일 뿐 진짜 영재는 아니라는 댓글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오늘은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인지 이 사건은 애초에 부모의 과욕이 문제라는 의견도 제법 올라오고 그런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대중과 언론은 어린 영재에게는 열광하지만 그 영재가 자라 10대 중반쯤 되어 진짜 영재인지 여부가 판정될 쯤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옛날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천자문을 외우면 천재라고 떠들썩했다.
나는 그동안 가끔 영재교육에 대해 언론 인터뷰를 해왔는데, 대다수의 기자들은 뛰어난 어린 영재에 대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이미 진짜 영재임이 확인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것은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영재일 뿐이라는 잘못된 통념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성취한 높은 수준의 수학적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 전 미국에 윌리엄 사이디스(1898-1944)라는 천재가 있었다. IQ가 당시 기준으로 250이고 8세에 9개 언어에 통달하고, 나중에는 25개 언어를 구사했다. 11세에 하버드에 입학했는데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여생을 외로운 은둔자 생활을 하다 죽었는데 그런 그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과학적 강제교육의 멋지고 아름다운 승리”라고 비꼬았다.
예전의 국민영재 S군과 이번 B군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자식을 국민영웅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의 아버지가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는 점이고 셋째는 어린 아이를 턱없이 높은 학교에 보내 교육시키려고 한 부모와 관계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반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진짜 영재와 가짜 영재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대중과 일부 언론은 진짜 영재인 B군이 가짜 영재들에게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B군 아버지가 예전에 올린 ‘길러진 영재와 타고난 영재’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서 그는 “영재에는 이 두 가지가 있는데 B군은 후자에 속한다”며 마치 자신의 아들과 같은 영재만 진짜 영재이고 교육을 통해 길러진 영재는 진정한 영재는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이 생각은 자체로 모순적이다. 어린 자식에게 선행학습과 과다한 조기 진학을 하게 하면서 자신의 아이는 길러진 영재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천재성의 정도, 그 천재성의 지속성, 학습 의지 등은 속단하면 안 된다. 당연히 타고난 영재와 길러진 영재가 따로 있지 않다. 각자의 지능이란 타고난 재능과 교육이 공동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타고난 재능이 길러진 능력보다 더 귀한 것도 아니다. 어릴 때 보이는 재능의 큰 차이는 자라면서 점차 줄어든다. 뒤늦게 크는 아이들이 무서운 법이다. 최근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영재교육은 긴 호흡을 갖고 차분하게 해야 한다. 결국 목표는 훌륭한 전문가로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다한 대중 노출과 과다한 월반은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뛰어난 영재를 보면 대개 그 학생을 위한 ‘특별한 교육’을 떠올린다. 영재에게 무엇인가 효율적인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은 영재교육이든 일반교육이든 지식과 지능의 발전이 그렇게 도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분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아이의 능력, 학습 의지, 성격 등과 맞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 주고 한편 좋은 멘토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재들에게도 사회성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정서적인 안정이 실력 향상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영재들에게도 다양한 소양을 기를 시간이 필요하고 같이 놀 친구들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중만이 아니라 교육 관계자, 언론 등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