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허병섭 목사 11주기 추모 ‘두레박의 꿈‘
허병섭샘(녹색대학교에선 허병섭 목사님을 ‘목사’ 대신 ‘샘’이라 불렀다)은 일생동안 꿈을 꾸고 살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이 나라의 민주화를 꿈꿨고, 산업화 과정에서는 빈민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건설노동자 공동체를 만들어 빈민노동자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1987년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자 자신이 이뤄온 기반을 박차고 나와 생명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스스로 농부가 되어 생명모심 살이에 나선 것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던 것과 비슷하다. 아브라함은 떠나간 자리로 되돌아올 기약 없이 신이, 시대가, 그리고 문명이 이끄는 곳으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살았다. 고대 시대에 기존의 삶터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자기가 쌓아온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었고 곳곳에서 위험한 상황과 마주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허병섭샘의 삶도 정주를 거부하고 유목민으로 살고자하는, 자기 성찰에 기반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꿈을 꾸는 삶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꿈은 현실에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그리고 시대가 요청하거나 오늘로 다가와 있는 미래에 대한 투신은 무소유의 삶을 사는 허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타인들에게는 버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허병섭샘 꿈의 원형은 ‘초대교회공동체’에서 기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영적인 삶과 일과 생활을 같이 나누는 고대 초대교회공동체를 현실로 되살리고 싶은 과제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그 방법을 찾아내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허샘은 한신대학교에서 경험한 학문하는 기쁨-캠퍼스 내에서 학생과 교수가 함께 어울려 먹고 자면서 함께 연구하는 공동체-과 그의 스승 문동환목사님이 여러 동지들과 함께 만든 ‘새벽의집’에서 ‘초대교회공동체’의 퍼즐들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벽의집’은 우이동에 터를 마련하여 여러 가정이 모여 살되 구성원들 각자의 일터는 달리하는 공동체였다. 그러다 허샘은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지 않고 생활하면서 필요한 전문성은 함께 학습하고 연구하는 ‘슈마허컬리지’를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그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의 현대적 가능성을 찾아내었던 것처럼 보인다.
허샘은 ‘녹색대학교’(후에 온배움터로 개칭)를 학생들과 샘 그리고 녹지사(녹색대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들이 함께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로 일구어 가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였다. 허샘과 함께 일군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와 함양 ‘녹색대학교’(온배움터)에서 나는 허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 차이가 많이 나지만 ‘한신대학교’의 경험을 같이 했던 점에서도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허샘만큼 공동체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기에 늘 허샘의 꿈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이해란 이성을 넘어 실천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허샘은 서로 주체성과 서로 다름을 철저하게 믿고 실천하고 살았다. 그러기 위해 녹색대 구성원들의 자율과 자치 그리고 상호이해에 기반한 협동을 강조하였다. 행여 허샘이 구성원들과 합의하여 시행하려는 정책에 늦게 따라오는 구성원들이 있으면 기다릴 줄도 알았다. 때로는 구성원들의 뜻이 합당하면 기꺼이 수용할 줄도 알았다. 허샘의 저서 <스스로 말하게 하라>에서처럼 그는 말만으로 살지 않고 본인이 한 말은 반드시 실천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허샘의 녹색대학(온배움터)의 꿈은 미완으로 끝났다. 2007~2008년에 걸쳐 ‘온배움터’ 발전계획을 세워 막 실행하려던 참에 허샘이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지신 것이다. 사실 그의 꿈인 ‘온배움공동체’(노동과 학문과 생활이 일치하는 공동체)는 실현이 쉽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였고 물(학생)들과 샘(교수)들에게 혼을 담아 ‘온배움공동체’를 설명하고 함께 만들어 가자고 설득하였지만, 이해받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샘은 외로웠을 것이다.
한편에는 이해받지 못한 자의 외로움이 자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생명 살림에 대한 열정을 결코 놓치 않는 허샘의 삶은 예수를 닮았다. 예수가 군중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보듬어주고, 병을 고쳐주고, 위로하다가도 군중들의 환호를 향유하지 않고 홀로 산으로 들어가 본래적 자아와 만나곤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11주기를 맞아 나온 <두레박이고 싶습니다>(이하 두레박의 꿈)은 허샘을 기리는 사람들(학부생, 대학원생, 교수)에 더하여 특별기고 형식으로 전희식(농부작가) 선생이 쓴 글과 허샘이 직접 쓴 것이다.
<두레박의 꿈>은 Ⅰ부는 허샘을 기리는 온배움터 구성원들이 쓴 것이고 Ⅱ부에는 허샘의 글을 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허샘이 쓴 글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향해 썼는지 알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리고 허샘 생존에 펴내는 책이 아니라서 단상인지 강연인지도 모호하다. 그렇지만 허샘이 온배움터에 머물던 2005~2008년 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허샘의 글을 내용상 비슷한 주제로 엮을 수밖에 없었다.
<두레박의 꿈>이 나오기까지 많은이의 수고가 있었다. 글을 쓰기도 하고 발간비(뒤에 후원자 명단 참고)를 보탰다. 이 자리를 빌어 허샘 회고록 발간에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끝으로 이 책을 출판하는데 정상을 다해준 개마서원 윤혜경 대표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