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굴곡진 정치사, 미국 수중에서 놀아나는 카드에 불과

*아시아엔 해외필진 기고문을 한글번역본과 원문을 함께 게재합니다.

[아시아엔=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장] 1970년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은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꺼내들 수 있는 절대적인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게임에 뛰어든 사다트는 시나이반도의 대부분을 되찾았으며 유대 국가와의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오늘날 중동의 정치게임에서 미국은 얼마나 많은 카드를 손에 쥐고 있을까?

미국과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약 2세기 전으로, 근간은 교역이었다. 1883년 무스카트(오만)의 술탄은 영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로 미국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 앞서 1857년 아랍만의 반대편에서는 미국과 페르시아의 교역이 막 시작됐다. 교역으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인 관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1944년 영미 석유협정 “미국, 석유 순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1944년 8월 체결된 영미 석유협정은 양측의 중동산 석유 통제권에 관한 협상에 기초했다. 1944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 대사에게 “페르시아 석유는… 영국의 것이다. 양국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를 공유한다. 사우디라아비아 석유는 미국에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골자로 하는 영미 석유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중동의 석유가 미국과 영국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정치학자 프레드 H. 로슨은 이에 대해 “미국은 협약국으로부터 생산되는 석유에 대한 ‘모든 유효한 계약과 합법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당시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던 미지의 땅에서는 ‘공평한 기회’를 통해 개척하고자 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정치학자 어바인 앤더슨은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중동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 시기 미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석유 순수출국에서 순수입국으로의 전환”이라고 말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전 대통령 <사진=위키피디아>

1954년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군사원조를 받은 적이 있다. 1956년 당시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미국의 영향력에 지쳐버렸다. 나세르는 미국이 원조의 대가로 이집트의 정치경제에 개입할 것이며 ‘식민주의 냄새가 난다’고까지 생각했다. 나세르는 미국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세르는 1952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의 고위관료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백악관도 그를 아랍의 유망하고 온건한 지도자로 여겼다.

그러나 1955년 이집트와 소련의 무기계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이집트 관계는 냉각되기 시작했으며, 1956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집트 아스완댐 건설에 대한 차관 제공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1956년 10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과 이집트와의 제2차 중동전쟁에서 아이젠하워는 이집트를 지지했다. 나세르는 이에 대해 일시적이나마 고마움을 느꼈지만, ‘아이젠하워 독트린’은 근본적으로 ‘나세르주의’를 억제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양국의 관계는 나날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시리아와 ‘6일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 시리아의 골란고원,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점령했다.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1970년대 이래로 이스라엘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왔다. 1970년 9월 17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요르단군은 팔레스타인 게릴라 캠프를 공격하며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미국은 레바논 앞바다에 항공모함과 구축함 6척, 터키에는 지상군 병력을 배치시켜 후방에서 지원했다.

미국은 20세기 중반 석유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됐다. 1970년대 전후로는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촉발시켰다. 1973년 석유 위기는 그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아랍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국들이 석유 금수 조치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금수 조치는 1973년 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국가들을 대상으로 시행됐으며, 캐나다, 일본,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이 이에 해당됐다. 금수 조치는 국제 정치와 세계 경제에 말 그대로 ‘충격’을 야기했다. 훗날 세상은 이를 ‘제1차 오일 쇼크’라 불렸다.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과 모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EPA/연합뉴스>

왕가 보호-석유 공급으로 시작된 미-사우디 밀월, 그러나…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는 1945년 퀸시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조약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석유를 공급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인 사우드 가문을 보호하게 됐다. 미국은 또한 걸프전 동안에는 이라크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50만에 달하는 병력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에게 “미군의 지원이 없으면 불과 2주도 권좌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엄청난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미국이 더 이상 특정 정권의 보호자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란 뉘앙스와 다름 아니다.

이란의 사례를 살펴보자.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수상이 쿠데타로 축출당한 사건에 개입한 이래 1979년 인질 사태, 2020년 1월 이란 최고장성급 암살까지 미국과 이란은 수십년에 걸쳐 여러 굵직한 사건들로 얽혀 있다. 미국과 이란의 보수적인 종교, 정치 지도자들은 이란의 미래 및 역내 주도권 등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몇 년간 소강상태로 접어든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세월을 마치 전쟁을 앞둔 적대국처럼 부딪혀 왔다.

이란 국왕(왼쪽)과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위키피디아>

이란 팔레비 왕조의 최후에도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개입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미국과 영국은 국왕이 이란에서 탈출하도록 강요했고, 그는 암치료를 받기 위해 미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여러 나라를 방황했다. 세상은 이란의 마지막 국왕을 미국과 영국의 꼭두각시로 여겼다.

이집트와는 어땠을까? 무바라크 전 대통령 임기였던 2011년 1월 25일 혁명이 발생했는데 미국은 이집트의 기존 정치체제가 아닌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왔다. 미국은 오랜 친구 이집트가 정작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중동의 굴곡진 역사는 미국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카드(수단)에 불과하다.

당장 수중에는 없지만 미국이 획득하기만 하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카드들이 중동에 여럿 보인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의 대미관계는 미국이 중동에 흩뿌려져 있는 카드들을 얼마나 많이 회수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렸다.

The USA – Middle East Game: The Lost Cards!
by Ashraf Aboul-Yazid, AJA President

In 1970s, late Egyptian President Anwar Sadat used to say “America held 99% of the cards in the Arab ? Israeli conflict”. When Sadat joined the game, he won back every inch of Sinai and secured a peace treaty with the Jewish State. Today, we may ask politics’ observers: “How many cards left to US to play with in the recent Middle East Game?”

It was almost two centuries ago when U.S. relationship with Middle Eastern countries started, basically for commercial reasons. As early as 1833, the Sultan of Muscat (Oman) saw the U.S. as a potential balance to Britain’s overwhelming regional influence. On the other side of the Arab Gulf, commercial relations opened between the U.S. and Persia in 1857, after Britain persuaded the Persian government not to ratify a similar agreement in 1851. The two World Wars had their hands to change these early business relationships to be politically mixed.

The Falling Cards of Oil
The Anglo-American Petroleum Agreement of 1944 was based on negoti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Britain over the control of Middle Eastern oil. The American President Roosevelt told a British Ambassador in 1944: “Persian oil … is yours. We share the oil of Iraq and Kuwait, as for Saudi Arabian oil, it’s ours”. On August 8, 1944, the Anglo-American Petroleum Agreement was signed, dividing Middle Eastern oil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Britain. Consequently, political scholar Fred H. Lawson remarks that by the mid-1944, U.S. officials had buttressed their country’s position on the peninsula by concluding an Anglo-American Petroleum Agreement that protected “all valid concession contracts and lawfully acquired rights” belonging to the signatories and established a principle of “equal opportunity” in those areas where no concession had yet been assigned.

Furthermore, political scholar Irvine Anderson summarizes American interests in the Middle East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 noting that, “the most significant event of the period was the transition of the United States from the position of net exporter to one of net importer of petroleum.

The 1973 oil crisis or first oil crisis began in October 1973 when the members of the Organization of Arab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led by Saudi Arabia proclaimed an oil embargo. The embargo was targeted at nations that had supported Israel during the 1973 war. The initial nations targeted were Canada, Japan, the Netherlands, the United Kingdom and the United States with the embargo also later extended to more countries. The embargo caused an oil crisis, or “shock”, with many short- and long-term effects on global politics and the global economy. It was later called the “first oil shock”.

The Missing Cards of Friendship
Although accepting large sums of military aid from the United States in 1954, by 1956 Egyptian leader Nasser had grown tired of the American influence in the country.

The involvement that the U.S. would take in Egyptian business and politics in return for aid, Nasser thought “smacked of colonialism.” Nasser had ambivalent feelings toward the United States. From 1952 to 1954 he was on close terms with U.S. officials and was viewed in Washington as a promising moderate Arab leader. The conclusion of an arms dealt with the USSR in 1955, however, had cooled the relationship between Cairo and Washington considerably, and the Dulles-Eisenhower decision to withdraw the offer to finance the Aswan High Dam in mid-1956 was a further blow to the chances of maintaining friendly ties.

Eisenhower’s stand against the British, French and Israeli attack on Egypt in October 1956 created a momentary sense of gratitude on the part of Nasser, but the subsequent development of the Eisenhower Doctrine, so clearly aimed at ‘containing’ Nasserism, undermined what little goodwill existed toward the United States in Cairo.

The Wrong Cards of Occupation
In June 1967, the occupying state of Israel fought with Egypt, Jordan, and Syria in the 6-Day War. As a result of the war, Israel captured the West Bank in Palestine, the Golan Heights in Syria and the Sinai Peninsula in Egypt. The U.S. supported Israel with weapons and continued to support Israel financially throughout the 1970s. On September 17, 1970, with U.S. and Israeli help, Jordanian troops attacked Palestinian guerrilla camps, while Jordan’s U.S.-supplied air force dropped napalm from above. The U.S. deployed the aircraft carrier Independence and six destroyers off the coast of Lebanon and readied troops in Turkey to support the assault.

The American interventions in the years before the Iranian revolution have all proven to be based in part on economic considerations, but more so have been influenced and led by the international Cold War context.

As the relationship between longtime allies Saudi Arabia and the United States becomes increasingly strained, China could cultivate a stronger bond with the Middle Eastern kingdom.

In a phone call between Saudi Crown Prince Mohammed bin Salman (colloquially known as MBS) and China’s President Xi Jinping, the two leaders reaffirmed China would continue to buy oil from Saudi Arabia, and discussed future avenues of cooperation in technology, trade and infrastructure.

Saudi Arabia is China’s largest supplier of oil, followed by Russia. As sanctions over the invasion of Ukraine make Russian oil difficult to procure, Beijing must maintain a good relationship with its oil-rich Arab supplier. Facing economic problems at home and an increasingly unyielding West, China’s energy security has taken on greater importance, especially as the country attempts to wean itself off coal.

The False Cards of Protection
Foreign policies of the US in Saudi Arabia started with The Quincy Pact 1945, which engages the US in protecting the Saud family in exchange for providing oil to the US. Also, military aid was provided to Saudi Arabia during the Gulf War with almost 500 000 soldiers sent to Saudi Arabia to protect from Iraq. These events contributed to making the Saud Family dependent on US protection.

But in 2018, President Donald Trump made an undiplomatic remark about close ally Saudi Arabia, saying he warned Saudi Arabia’s King Salman he would not last in power “for two weeks” without the backing of the U.S. military!

It seemed that US will not be any longer a real supporter or a sincere guard to protect any regime. Looking at Iran, the U.S. has a complicated history dating back decades; from the U.S. involvement in the shah’s 1953 coup of Prime Minister Mohammed Mosaddegh, to the Iran hostage crisis in 1979, to the U.S. killing of one of Iran’s top generals in January 2020, the U.S. and Iran’s conservative religious and political leaders have often found themselves in stark opposition to one another about their visions for both Iran’s own future and larger interests in the Middle East. Throughout the years, there have been periods of decreased tensions, but there have also been times where the two countries have found themselves on the brink of war.

Even, when you refer to Egypt’s former President Mubarak, U.S. has gone so far to support Muslim Brotherhood to take control after the Revolution of January 25, 2011. They kept their helping hand away from protecting or saving their sincere friend for three decades, similar to what they did with the shah of Iran; whom was seen by many as a puppet of the U.S. and the UK, which forced him to flee Iran amid the intensifying unrest, traveling to a number of countries before entering the U.S. to receive cancer treatment. The winding history of the Middle East is nothing more than a card for the United States to play the game.

The U.S. future relationships with Iran, Saudi Arabia, Egypt and the rest of the Middle Eastern countries will definitely depend on how many of absent cards would it be able to recollect to secure playing its game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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