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품격···”필리핀 막사이사이같은 지도자 없소?”
“대통령각하! 아들이 전방부대에서 총기사고로 죽어갑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한 병사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정이었는데, 대통령은 황급히 군용기를 타고 달려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세부의 상공에서 비행기 사고로 운명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라몬 막사이사이(1907~1957) 필리핀 대통령 얘기다. 그는 필리핀 국민들의 영웅이며 우상이었다.
일본의 필리핀 침략 때, 그는 자원입대 하였다. 전쟁에서는 졌지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그는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막사이사이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는 항상 사기가 넘쳤다.
1946년 그가 처음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옛날 게릴라부대 동료대원들이 선거운동에 필요한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보태 쓰라면서 성금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는 “호의는 좋으나 이는 결코 나를 돕는 길이 아니다”라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퀴리노 대통령이 그를 국방부장관으로 임명하자, 그는 암살 위험을 무릅쓰고 공산당 지도자들과 담판을 했다. 마침내 그는 공산당 조직을 와해시켜 버렸다.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패한 군인들을 처벌하였다. 그리고 정직과 헌신으로 나라에 봉사하는 군인들에게는 보상을 충분히 하고 군을 정화시켰다.
공산 게릴라 단체는 대대적으로 토벌하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 관용차인 크라이슬러 리무진을 이용하지 않고, 중고차를 빌려 타고 입장했다. 반대파들이 무식하다고 비판하면 “나는 책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다. 오직 인격으로 정치를 한다”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 거처하는 말라카냔궁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여 서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찾아와 그들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게 하였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그의 가족과 측근들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다. 전임자들과 달리 도로, 교량 및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대통령 신분이면서도 반대파 인사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애국심에 호소하였다. 또 대화로 설득하였다.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을 시도하였다. 공직사회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행하였다.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영도력으로 필리핀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제2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 불의의 사고로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필리핀은 아시아 경제선진국 자리에서 내려와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품격’을 지닌 지도자를 모실 복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