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교민사회,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귀소본능’

“미국사회 이민자 집안에서 한국말만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의문일 수 있다. 영어는 매우 어려운 언어다. 부모 세대 중에서 ‘우리 아이 영어가 시원치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언어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소통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사진은 시카고 중심가. <필자 김정일 제공>


올초 윤여정씨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 가정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줬습니다. 내후년이면 한국인이 하와이에 첫발을 디딘 지 110년, 현재 미국 50개주 어디서나 한국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사회 속 한인들의 삶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아시아엔>은 반세기 동안 재미 언론인으로 활약해온 김정일 <시카고 VOKATV> 해설위원의 글을 독자들께 전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김정일 시카고 VOCATV 해설위원] 우리가 미국에서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잘 사는 방법이 무언가?” 하면서 지속적으로 질문을 했다. 정답인 줄 알았던 것이 오류인 것도 나타났다.

고향이 어디?

이민자에게 고향은 없다. 그만큼 이민의 생이 험난하고 슬프고 외로운 것이다. 김준태 시인은 시 ‘고향’에서 “눈 감고 넘어져도 흙과 돌이 안아준다”고 했다.

내게도 그럴까? 나는 평북 의주 태어났고, 원래 본적은 평북 희천이다. 젖먹이일 때 어머니 등에 업혀 해주 갯벌 넘어서 월남해 서울에서 자라 교육받고, 피난 가서 대구에 살았다. 그리고 시카고로 이민 와서 거의 50년을 살고 있다.

과연 내 고향은 어디인가? 시카고에 이민 와서 50년을 살았지만, 나는 시카고를 나는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요즘에 이민 초기 자주 불렀던 ‘나의 살던 고향을’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고향은 어머니의 품이고 그게 본향 아닐까?

아이들에게 한국말 잘 하고, 한국문화에 관심 갖고, 한국 배우자 얻고, 한글학교 다니고, 집에서 한국말 하고…. 이렇게 살면, “너희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이 복합적인 사회에서 크게 발전하고 번영할 것”이라고 교훈해 왔다.

그러나 이 답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3세를 키워 본 사람은 모두 경험하는 사실이다. 정답에 가까운 것은 “세계인( Cosmopolitan)으로 키우는 게 맞다.” 이 복잡 다양한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리더로 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어디엔가 얽매이지 않은 진취적인 인격체를 키우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화 중에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이 언어, 가장 오래 남는 것이 음식이다. 2, 3세들이 할머니 레서피 자랑을 한다.

일단 여기서 잠깐 정리하면 첫째, 문화는 생성과 소멸, 변화를 계속한다. 둘째, 우리 2세들의 이족 결혼률이 60%, 우리 집안도 예외가 아니다. 3세 손자녀들에게 한국문화, 한민족의 얼을 가지고 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1세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에고이즘일 수도 있다. 우리 후세들은 세계주의적인 인물로 키워야 한다.

넓고, 복잡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물로 말이다. 그들이 세계를 리드하고,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물로 키워야 한다.

영어와 한국어

집안에서 한국말만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의문일 수 있다. 영어는 매우 어려운 언어다. 부모 세대 중에서 ‘우리 아이 영어가 시원치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언어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소통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가령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청년이 주류사회의 법률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애를 섰지만, 잘 안됐다고 하면 대부분 영어 편지가 서투른 때문이다. 주류사회에서 ‘출세’ 하려면 리더십 증명이 중요하다. 소위 ‘Hallway diplomacy’라는 것이 있다.

타 소속원들과 잘 소통하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즉 높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리더십을 보여 줘야 출세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간혹 불이익이 유리천장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의 면접에서는 면접관에게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기회를 주시면….” 이렇게 하는 대신 “이전 제가 최고로 잘할 수 있다”고 하는 게 훨씬 낫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팔아야 한다. 겸양지덕이 미국사회의 룰이 아닐 수 있다.

“네 언어는 영어다. 최고의 영어실력을 닦아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귀소 본능

미국 이민자들에게 귀소본능의 생물학적 원칙이 잘 먹히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죽을 때, 태어날 당시의 자리로 가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카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눈물짓는 게 정설인데…. 그러나 시카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고향에 묻히겠다는 사람이 10% 미만이었다. 실제로 지금 시카고 있는 한인묘지는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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