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과 인연 “어떻게 끊느냐가 아닌 어떻게 풀어 가느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연분은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맺게 되는 인연이며,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인간관계의 연(緣)을 말한다.
그런데 연분과 인연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고사성어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은 엎질러진 물은 다시는 물동이로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한번 헤어진 부부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한번 헤어진 벗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원래 뜻이다.
중국 주나라의 명재상 태공망 강여상(BC 1211~1072)이 어느 날 가마를 타고 행차를 하는데 웬 거지 노파가 앞을 가로 막았다. 바로 어려웠을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 마(馬)씨였다. 남편 여상이 주나라 재상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 길을 걸어서 찾아온 것이다.
마씨는 땅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강여상은 하인을 시켜 물 한 동이를 떠오게 한 후, 마씨 앞에 물동이를 뒤집어엎었다. 물은 다 쏟아지고 빈 동이는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후 마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동이에 쏟아진 물을 도로 담으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을 용서하고 집에 데려 가겠소.”
마씨는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니!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도로 담습니까?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강여상은 그 말을 듣고는 “맞소. 한번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 번 집과 남편을 버리고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소.” 마씨는 호화로운 마차에 올라 멀리 떠나가는 남편 강씨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옥단춘전>(玉丹春傳)에 나오는 얘기다. 어느 마을에 김진희(金眞喜)와 이혈룡(李血龍)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을 했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감사가 됐다. 그러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중 평양감사가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는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鍊光亭)에서 평양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진희는 역시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그를 죽이라고 했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혈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 혈룡을 구해 그녀 집으로 데려가 가연(佳緣)을 맺었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보살펴 주었다.
그 후 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급제, 암행어사가 돼 걸인행색으로 평양으로 갔다. 연광정에서 잔치하던 진희가 혈룡이가 다시 찾아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도!”를 해 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린다. 그 뒤 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해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강태공과의 천생연분을 함부로 끊은 아내 마씨와 이혈룡과의 친구 간 우애를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모두 말로가 매우 비참하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다. 삶에서 생긴 매듭도 함부로 끊는 게 아니고 푸는 것이다. 일단 끊어 버린 인연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다. 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된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낸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君子 求諸己 小人求諸人)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