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한글, 그리고 ‘재잘재잘’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재잘재잘’은 낮은 목소리로 빠르고 떠들썩하게 자꾸 이야기하는 소리를 나타내는 부사다. 필자가 다니는 원불교 여의도교당 6층에 최근 어린이 미술학원이 들어왔다. 학원 이름이 ‘재잘재잘’이다.
재미있고 특이해서 학원측에‘재잘재잘’의 의미를 물어 보았다. 앞의 ‘재잘’은 재미있게 잘 배우자는 뜻이고, 뒤의 ‘재잘’은 재미있게 잘 가르치자는 의미란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말인가? 지난 주말이 제 575돐 ‘한글날’이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글을 배우려고 각급 학교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특히 BTS 방탄소년단의 후원회인 ‘아미’(ARMY)의 한글배우기 열풍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말로 BTS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의 문화를 배우려는 것이다.
필자한테 매일 원불교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이나 정산(鼎山) 종사, 대산(大山) 종사의 법문을 카톡으로 보내주는 분이 있다. 원불교 샹하이교당 교무를 역임한 원로 교무시다. 그런데 우리가 원래 한문체(번자체)가 눈에 익어서인지 간자체의 법문은 읽기가 불편하다.
중국인이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자. 몇 만개 넘는 한자를 어떻게 좁은 자판에서 칠 수 있을까? 한자를 자판에 나열하는 게 불가능해, 중국어 발음을 먼저 영어로 묘사해서 알파벳으로 입력한 다음 단어마다 입력키를 눌러야 화면에서 한자로 바뀐다.
불편한 것이 더 있다. 같은 음을 가진 글자가 20개 정도는 보통이다. 그 중에서 맞는 한자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중국을 앞선 이유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이핑을 많이 하는 전문직 중국인들은 한자의 획과 부수를 나열한 또 다른 자판을 이용하고 있다.
자판을 최대 다섯 번 눌러 글자 하나가 구성되므로 이를 ‘오필자형’(五筆字型)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것은 속도는 빠르지만 익히기 어려워 일반인은 잘 할 수 없다.
그럼 일본은 어떨까? 컴퓨터 자판을 보면 역시 알파벳이다. 일본인들은 예를 들어 ‘世’를 영어식 발음인 ‘se’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법을 쓴다. 각 단어가 영어 발음 표기에 맞게 입력되어야 화면에서 ‘가나’로 바뀐다. 게다가 문장마다 한자가 있어 쉼 없이 한자 변환을 해줘야 한다.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나아가 ‘추’로 발음되는 한자만 해도 ‘中’을 비롯해 20개 이상 이니 골라 써야 한다. 일본어는 102개의 ‘가나’를 자판에 올려 ‘가나’로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익숙해지기 어려워 이용도가 낮다. 이러니 인터넷 친화도가 한국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말레이시아처럼 언어가 여러 가지인 국가들은 컴퓨터 입력방식 개발부터 골칫덩어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자음 14개, 모음 10개 등 모두 24개의 자음과 모음만으로 자판 내에서 모든 문자 입력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한글은 하늘의 축복이자 과학 그 자체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문장을 중국, 일본 문자는 35초 걸린다는 연구비교가 있다. 한글의 입력 속도가 7배 정도 빠르다는 얘기다.
정보통신(IT)시대에 한글은 보통 경쟁력이 아니다. 한국인의 부지런하고 급한 성격과 승부 근성에, 한글이 ‘디지털문자’로서 세계 정상의 경쟁력이 있는 덕분에,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 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종대왕은 수백 년 뒤를 내다본 정보통신 대왕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한글에 대한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알파벳 26자는 한글과 같은 소리문자이고 조합도 쉽지만, ‘a’라도 위치에 따라 발음이 다르고, 나라별로 독음(讀音)이 다른 단점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소리만 갖는다. 어휘(語彙) 조합능력도 가장 다양하다. 소리 표현만도 8800여개에 이르러, 중국어의 400여개, 일본어의 300여개와 비교가 안 된다.
세계적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이어서 세계 문자 중 으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알파벳의 꿈’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최저수준의 문맹률 제로가 가능했고, 이것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까지 반영한 ‘음성 공학적’ 문자여서 세계의 언어를 다 표현해 낼 수 있다. ‘맥도널드’를 중국은 ‘마이딩로우’, 일본은 ‘마쿠도나르도’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로 문자를 만들어 주는 운동이 추진되는 이유다.
외국인에게 5분만 설명하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할 수 있다. 기계적 친화력도 가장 좋은 정보통신 시대의 준비된 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