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바로알기···’기생’ 아닌 ‘열녀’이자 ‘애국충정 열사’

논개 표준영정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여름방학에 진주 촉석루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의기(義妓) 논개가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시퍼런 남강 물에 몸을 던졌다는 ‘의암’(義巖)에 서서 감상에 젖은 때가 있었다.

필자는 그때부터 부끄럽게도 논개가 의로운 기생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요즘에 와서야 논개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교육을 잘못 받은 탓이기도 하다. 지금도 백과사전에 ‘논개’를 쳐보면 ‘의기’로 쓰여 있다.

백과사전엔 “진주목(晉州牧)의 관기(官妓)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의기(義妓)이다”로 돼 있다.

그런데 최근 여러 학자들이 ‘논개가 기생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근거를 한번 알아보고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도 애국의 한 길이 아닐까 한다.

논개의 본명은 주논개(朱論介)다. 1574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선비였던 부친 주달문과 모친인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양반의 집안의 여식이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숙부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몸을 의탁하고 지냈다. 어린 나이지만 용모가 출중하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며 시문에도 능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이를 눈여겨 보아왔던 장수 고을 어느 부호가 논개를 어여삐 여겨 민며느리로 삼고자 대가로 숙부에게 쌀 50석을 지불하였다. 그러나 논개 모녀는 이를 거부하고 모친의 고향인 경상도 땅으로 도주해 어느 지인의 가택에 숨어 지냈다. 하지만 수소문해 추적해 온 고을 부호에게 발각되어 장수현감에게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다.

당시 고을 현감으로 ‘충의공 최경회’라는 사람이 있었다. 넉넉하고도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논개 모녀의 억울하고도 딱한 처지를 소문으로 듣고 있던 터였기에 판결 끝에 무죄 석방을 하였다. 그 후 오갈 데 없는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자신의 관저에서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었다.

논개가 성인이 되면서 아리따운 처자가 되어갈 무렵, 장수현감 최경회는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몸이 된 외로운 처지였다. 평소 아름답게 보아온 논개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현감 최경회는 넌지시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알렸고, 논개의 승낙을 받아내자 곧바로 자신의 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현감 최경회는 전라도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모집해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훗날 조정에서는 최경회의 공로를 인정하여 ‘경상도 병마절도사’(종2품)에 봉하고, 경상도 지역 병권을 줌으로써 왜구와 맞서게 했으나, 격전지에서 그만 순국하고 말았다.

남편을 잃고 비통해 하던 논개는 애국과 남편의 복수를 동시에 실현할 방법으로 왜장을 죽일 것을 결심하게 된다. 왜군 장수들이 승전에 도취되어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있을 때, 논개는 자신의 눈부신 용모를 기생으로 분장하여 가파른 바위 끝에 서서 왜군의 장수를 유혹했다.

진주 남강과 촉석루엔 논개의 얼이 남아있다

모두들 겁을 먹고 절벽에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했지만 적장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용기를 과시라도 하듯, 논개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논개는 자신의 계획대로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채, 적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뛰어들어 꽃다운 나이를 그렇게 조국에 바쳤다.

어쨌든 논개가 기생이었다는 잘못된 기록 때문에 그녀의 존재가 안타깝게도 정사에는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 유몽인의 지적에도, 논개는 해주 최씨 경상도 병마절도사(종2품의 벼슬) 최경회의 엄연한 후 부인이며, 선비 주달문과 모친인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반가(班家)의 여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논개는 열녀이자 뜨거운 애국충정 열사인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충렬을 기린 변영노 시인의 ‘논개’라는 시를 감상해보자.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푸르른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참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을 곳이 어찌 논개뿐이겠나? 친일 사학자 등이 역사를 왜곡한 탓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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