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춤꾼 최신아, 월북 무용수 최승희 계승 꿈 꾸다


‘멀지만 가야 할 그 길’…북의 장고춤·쟁강춤과 남쪽 춤 한데 어울려

탈북 무용수 최신아가 만든 ‘최신아예술단’이 13일 서울의 숲 아트센터 무대에 섰다. 남과 북의 춤사위 특징을 살려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뜻 깊은 자리다. 북한 장고춤·쟁강춤·사당춤 등 보기 힘든 이색춤을 선보였다.

‘쟁강춤’은 움직임이 많고 잰걸음으로 속도감도 있었다. 축귀와 복맞이로 부채를 들고, 손목엔 방울 달고 잽싸게 춤 춘다. 최승희 ‘무희춤’에서 유래한 춤사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눈길이다. 

10명 가량의 군무인데도 빠르고 절도 있는 동작이 참으로 눈부시다. 이날 공연은 ‘2022 남북문화예술교류 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데 힘 입었다.

부드러움 속 무게감을 지닌 남한 춤과 경쾌하고 역동적인 북한 군무가 조화를 이뤘다. 남북의 전통 춤을 새롭게 해석한 흥겨운 춤사위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최신아

‘최신아예술단’을 만든 그는 함경북도예술단 무용감독 출신의 무용수다. 2008년 탈북 후 예술단을 창단해 북한춤을 소개하고 제자를 길러왔다. 그는 2015년 11월 예술단을 창단했다.

창단 후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춤으로 꾸민 공연은 공전의 히트였다. 남의 신나는 노래와 북의 역동적인 춤사위가 절묘하게 콜라보를 이뤘다. 

순식간에 옷 색깔과 모양을 바꾸는 ‘변검’(變臉) 식으로 4계절을 그려냈다. ‘비목’ 작사가로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한명희 선생이 그를 몹시 아낀다. 탈북 무용수가 최승희를 계승하려고 갖은 애를 쓰니 관심이 갔을 법하다.

2018년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남북의 울림-남과 북의 춤’ 공연 중 최신아예술단의 삼색부채춤 장면 <연합뉴스>

발레나 현대무용이 승한 남과 달리 북에선 전통무용에 힘을 쏟는다. 살풀이와 태평무 등 전통 춤사위를 기본으로 삼아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신무용’으로 세계를 호령한 최승희를 계승하려는 꿈에 도전한 최신아는 평양의 예술인 가정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981년 중학교 때 평양학생소년궁전 가야금 소조로 들어간다. 무용이 멋져 보이자 담임을 졸라 무용 소조로 옮길 만큼 강인하다. 

예술영화촬영소 간부로 최승희와 연이 있는 아버지 DNA 덕일까? 아버지에 대한 최신아의 기억은 애틋하기만 하다. 소시 적부터 아버지 품에 안겨있을 때가 편안하고 좋았다고 한다.

1982년 집안이 함경북도 청진으로 추방된다. 둘째 오빠가 패싸움을 자주 하는 바람에 추방당한 것이다. 그는 가톨릭에 심취했을 정도로 북한 체제와 맞지 않았다. 반항아지만 최신아는 오빠를 따랐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력을 인정받아 청진예술학교에서 무용의 길을 이어간다.

살다보면 인생은 새옹지마일 때가 더 많다. 최신아에게 놓쳐선 안 될 뜻밖의 기회가 왔다. 최승희 1대 제자 김응범의 지도를 받는 행운을 잡은 거다. 하루 8시간 이상 김응범의 지도와 훈련을 견뎌냈다. 그후 최신아는 15년간 무대에서 1등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일 앞에서도 수 차례 공연했다. 17세 때 함경북도 예술단 무용수로 임명됐다. 무용수에서 감독까지 16년간, 모두 26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전승 40돌’ 때 ‘기러기떼 나르네’ 무용공연의 보조감독을 맡았다. ‘아리랑 대집단체조’(매스게임)의 원조격의 기념비적 공연이다. 그녀는 탈북 3년 뒤 2011년 중국 연변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행 결심에 대한 최신아의 회고다.
“표현의 자유가 숨 쉬는 한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2006년 중국 연변 외숙부 댁에 들렀다가 개방 중국의 속살을 봤다. 인터넷을 통해 접한 한국 대중문화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명가수 공연 때 뒤에서 춤추는 백댄서의 안무에 경악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헤드 뱅잉을 보고 “목이 빠지지 않나?” 걱정했을 정도였다. 

단순히 춤이 아니라 남북 체제의 차이를 보고 한국행을 다짐했다. “남한에 가서 진짜 최승희 무용을 보여주고 싶었다.” 최신아가 한국행을 결행하게 된 진정한 동기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연길에서 기차로 중국 남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육로로 태국에 몰래 들어갔다.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여정이었다. 벙어리 행세도 하고 윈난 쿤밍에서 6시간 걸려 높은 산도 넘었다. 메콩강을 따라 여러 고비를 넘긴 끝에 태국 경찰에 인계됐다.

최신아는 그때 자신을 도운 동포와 재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 최승희에게 직접 배운 1대 제자의 가르침을 3년간 받은 최신아. ‘춤의 전설’ 최승희류 장고춤을 배워 그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묘하게 엇갈린 운명이다. 최승희가 죽은 바로 그해 최신아가 태어난다. 최승희의 직접 지도는 받지 않았지만 ‘2대 제자’로 자격은 있다. 53세. 무용수로서 결코 작지 않은 나이지만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북한에서 힘들게 빼내 온 첫딸 강나라는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KBS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북한 주민의 사고방식, 옷차림, 생활상은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북에 두고 온 둘째 딸은 최신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늘이다. “꼭 데려오고 싶다”는 최신아의 두번째 꿈도 꼭 이뤄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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