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조성태 장관, ‘연평해전’ 승리 이끈 자주국방 ‘그루터기’

조성태 장관이 2000년 9월 남북 국방장관 회의에서 북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건배하고 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조성태 전 국방부 장관이 명목(暝目)했다. 정책기획관 전임자였던 윤용남 장군을 뒤따라 간 것이다. 일반 묘역에서 혼자 쓸쓸할 전임자와 함께 아우를 것이다.

채명신 장군과 같이 장관이 장군, 장교, 사병 구별 없이 같이 누워 있는 것도 여유 있게 받아들일 것이다.

조성태는 육군대학에서 전술학 명교관이었다. 국방대학원에서 일반학이 대학에서와 달리 항상 군사에 접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정책기획관과 정책실장으로 국방부 정책을 총괄하고 최초로 <국방백서>를 발간했다. 또 건전한 한미관계는 국방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다양한 군사외교를 발전시켰다.

조성태는 2군 사령관 시절 대침투작전은 향토사단장 책임 하의 통합방위작전임을 명확히 하였다. “모든 보고는 나에게만 하라. 그 위는 내가 책임진다”고 하여 사단장이 오로지 작전지휘에 집중토록 하였다. 대침투작전의 핵심은 위임과 집중이다. 통수계통에 익숙하지 않은 김영삼 대통령이 작전의 진도를 수시로 물어온 데 대해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조성태 장관과 부인 이영숙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접견하고 있다

조성태 장관은 ‘연평해전’에서 북한을 일축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장관의 탁월한 작전지휘와 현장 지휘관의 용맹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장관은 자신을 낮추고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통수지침을 부각시켰다. 연평해전은 북한 도발에 대한 답을 보여주었다.

조성태 장관은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열었다. 인민무력부장과의 대결에서 북한이 주적임은 변함없으나, 남북이 ‘잠정적 특수관계’에 있는 현실을 능숙하게 반영하였다. 군사실무회담을 통하여 실질적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 도로를 연결시켰다.

남북 지도자들은 경의선을 넘으면서 군의 공헌에 대해 항상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조성태 장관의 국회답변은 완벽했다. 철저한 준비는 물론 일문일답에서 보여주는 즉응성은 그의 명민함을 부각시켰다. 조성태는 장군으로서 성실하고 청렴했다.

중학교 시절 병점에서 천안까지 걸어서 통학했다. 장군들의 조그만 성의도 결국은 아래에서 올라온 하급장교들의 성의가 모아진 것이라는 군의 생리를 알고 있었다. 조성태는 빈한한 가정에서 자라서 그 돈이 초급장교들의 생활에 쓰여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작년 백선엽 장군 별세로 6.25세대는 갔다. 대한민국을 이 세대가 지켰다. 이제 베트남전의 실전을 담당했고 자주국방의 중심이었던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윤용남, 조성태는 정책실에서 자라난 후계들에 의해 충실히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연속되어 있다. 모든 것은 뿌리가 있고 맥락이 있다. 조성태는 국방의 한 그루터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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