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1세기 소크라테스가 부활한 이유

마포구 하늘공원에서 밤에 바라본 성산대교 주변과 뒤로 여의도 일대. 한국은 지난 50여년간 원조 받던 나라에서 투자하는 나라로 도약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엔=이판정 넷피아 이사회 의장] 대분기의 시대, 변혁기 대한민국, 미국에서 원조받던 나라에서 이제 투자하는 나라가 되었다.

지난 50여년 위대한 국민과 도전적 기업, 그리고 통찰력 있는 지도자를 만나 성공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이제 새 판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지난 50여년간, 산업혁명 이후 변화는 세상에서 변화에 적응, 더 빨리 추격할 수 있는 자세를 요구한 헤라클레이토스(BC 540-480)적 사고로 가능했다.

추격/추월 산업은 로열티를 내는 산업이다. 신산업 즉 헤게모니 산업은 로열티를 받는 산업이다.

이제 대분기의 시대다.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의 파고가 일렁이고 있다. 신(헤게모니) 산업을 만들고 세계경제를 혁신적으로 리드할 좋은 기회다.

대한민국 대혁신을 위한 어떤 철학적 사고가 필요할까?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줄 대융합의시대, 대분기의 시대다.

기계와 인간이 융합하고 과거와 미래가 융합된다. 산업과 산업이 융합되어 새로운 산업분류가 가능해졌다. 세계는 이미 제4차 산업분류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도 원래의 목적을 회복하여 생활인의 정치로 융합할 시대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추격산업에 필요한 철학에서 벗어나 변하는 세상에서 그 원인을 파악하여 본질을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통찰력이 필요하다.

21세기 대한민국, 급변하는 세상에서 그 본질을 지키고 새로운 본질을 창조할 시대다. 지금은 신산업(헤게모니산업)을 만드는 통찰력의 시대다.

추격산업으로는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없다. AI시대, 융합시대, 신(헤게모니)산업시대, 모든 영역에 질문이 필요한 시대다.

신산업으로 만들 1인당 국민소득 10만불 대한민국 그 기초를 다져야 한다. ‘지식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과 창조에 헌신할 철학’이 절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서 그 이유와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445)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다.

신기술이 일자리를 줄이고 있지만, 산업정책적으로 그 신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대량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에 살면서 20세기적 산업분류(1차, 2차, 3차)에 매달려 신산업분류인 ‘제4차 산업분류’를 정의하고 제4차 산업분류로 옮겨가지 못한 까닭이다.

역사는 입증했다. 일자리는 새로운 산업분류로 이동하면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음을···.

1차산업에서 2차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일자리는 급격히 늘었다. 2차에서 3차산업으로 확장되면서 더 고급 일자리와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했다.

영국의 콜린 클라크가 정의한 1, 2, 3차 산업분류로는 수용할 수 없는 ‘제4차 산업분류’ 시대다. 제4차 산업분류의 새로운 산업형태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1, 2, 3차 산업이 기계와 기술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미 산업간 융복합화되어 3차 산업분류 다음 분류인 제4차 산업분류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블록체인, AI, 로봇, 모빌리티, 플랫폼, 인터넷114, 메타버스, 긱경제···. 카오스적 혼돈의 시대다.

통찰력 있는 철학이 코스모스(안정/질서) 시대를 만들 수 있다. 원목적을 꽉 쥐고 진-위, 선-악, 미-추를 구분해야 한다.

모든 것이 융복합화되는 시대,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할 힘’이 필요하다. 통찰력을 으뜸으로 하는 ‘데스(파르메니데스) 型’ 시대다.

스스로 잘 알지 못함을 깨닫고 앎의 호기심으로 힘든 세상을 구할 ‘테스형(소크라테스)’ 사회다.

현장의 직관이 없으니 개념이 없고, 개념이 없으니 궤변에 포섭되어 본질을 놓친다. 본질을 놓치니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약자는 늘 기회조차 불공평, 불공정하다. 유행가로 ‘테스형’을 외치는 이유다.

리더그룹의 지식과 관념 너머에 진실과 지혜가 숨겨져 있다. 본질을 놓치는 까닭에 디지털 자본에 포섭되어 그들의 하수인이 되었다.

상부구조가 그들에게 포획되어 절대 다수의 근로자가 디지털 함정(web)에 빠지게 했다. 1800만이 넘는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의 땀의 가치가 일상적으로 착취당해도 법치와 행정은 눈을 감았다.

진실이 숨겨진 현상에 양심도 함께 숨었다. 본질도 숨었다.

스마트폰 시대다. 그런데 소속한 기업/기관 이름으로 전화처럼 한번에 연결되지 않는다. 인터넷 114로만 연결된다. 그런데도 ‘스마트한 폰’이라고 한다.

만약 법이 없어 모든 전화가 114로만 돌려진다면, 전화번호를 알리는 모든 근로자의 땀의 가치는 114의 것이 되고 만다. 경제는 선순환할 수 없음이다.

인터넷시대, 기업명 상품명이 매번 인터넷 114로만 연결이 된다. 청와대를 입력해도 전화처럼 바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대법원장도 언론도 당연한 것인양 구경만 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리더와 지식인의 수치다. 소속한 기관의 이름으로 직접 연결이 되지 않는다. 직접 갈 수 없는 인터넷폰을 스마트한 폰 이라고 한다.

모든 근로자가 자신의 기업명과 상품명을 알리면 알릴수록 알린 만큼 피해를 보는 구조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노래가 등장한 이유다.

아날로그시대 산업자본가가 상부구조와 결탁하여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으로 근로자의 땀의 가치를 착취하였다면, 디지털시대 디지털기술로 번 자본이 개념없는 상부구조를 포획하였다. 절대다수 근로자의 땀으로 만든 잉여가치를 디지털 기술로 착취하고 있다.

상부구조가 포섭되어 눈감아 주고 디지털 기술은 착취의 도구가 되어 ‘눈 뜨고 코 베 가는’ 구조다. 디지털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배달 근로자가 과로로 사망하여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봉잔치를 벌였다. 상부구조는 오히려 그들의 눈치만 본다.

삶의 팍팍함을 반영하는 ‘테스형’은 스마트폰을 든 디지털 시민의 절규다. ‘디지털 박정희’, ‘노무현 시민정신’을 함께 요구받는 이유다.

코로나19, 환난상휼 사회다. 현상이 아닌 본질을 보라는 ‘데스형’ 시대, 앎의 호기심으로 소외된 절망적인 세상을 구할 ‘테스형’ 사회다.

경제·사회·문화·정치를 반석 위에 올리려면, 모든 영역, 원목적에 맞는 융합이 절실한 시대다. 생활인 정치, 생활인 대통령이 출현할 시대다.

21세기 소크라테스가 부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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