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다도···”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다”

녹차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려는 것일까? 여치와 녹차. <사진 최성민>

요즘 명상(瞑想)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명상은 미국 쪽에서 바람이 일어 국내에 수입돼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원래 명상의 고향은 도가·불가·유가 사상 등 동양사상이다. 이른바 집중명상(Mindfulness) 등 미국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명상은 사념처 수행과 같은 불교의 수행 프로그램을 가져다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각색한 것이다.

동양 사상 유·불·도는 ‘도’(道)라는 수양(수행 또는 양생) 언어를 공유하면서 일찍이 이와 연계되는 수양·수행·양생의 명상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 유가의 정좌(靜坐), 불가의 좌선(坐禪), 도가의 좌망(坐忘)이 그것이다. 동양사상의 이 세 가지 명상 방식은 기본적으로 외부 대상에 의한 자극이 유발하는 사념(邪念)과 잡념(雜念)을 단절시키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둔다.

명상 개념은 마음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서양에서는 19세기 프로이드가 마음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오로지 이성을 중심으로 외부 객관세계에 대한 진리탐구에 전념한 탓에 명상이나 수양에 관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동양사상은 ‘사상’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그 출발점이 마음이자 마음의 구조에 관한 관심이었다. 따라서 정좌·좌선·좌망은 각각 유불도가의 마음구조에 맞춰 그 내용과 목적이 규정된다.

한국 전통녹차는 차의 3대성분이 적절히 함유돼 이상적인 연록생을 띠고 있다. <사진 최성민>

유불도의 마음구조를 가장 심층적으로 파악한 쪽은 불가사상이다. 불가에서는 석가모니 가르침을 바탕으로 마음을 8개 층으로 나누고, 가장 심층에 있는 제8 아뢰야식이 만물을 그려내는 원천이자 불성(佛性)이라고 본다. 아뢰야식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에 일종의 기(氣)적 매질(媒質)의 업력(業力)이 종자(種子)로 저장돼 연기(緣起)로 이행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불가의 불성론에도 기론(氣論)적 요소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불가의 좌선은 전5식~제7식 말라식(자의식)을 걷어내고 아뢰야식을 깨닫기 위한 노력이다.

유가는 애초에 불가처럼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으나 불교 도입 이후 송대(宋代)에 불교의 불성론에 자극을 받고 이기론을 도입하여 심성론을 개발했다. 유가의 마음구조는 기본 바탕이자 이(理)로 차 있는 미발(未發)의 성(性)과 성이 기(氣)로 활성화한 이발(已發)의 정(情)으로 되어있다. 유가의 정좌는 송대 성리학 성립과 더불어 주희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었다. 주희는 스승 연평(延平) 이통(李?)의 지시에 따라 미발체인(未發體認)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뒤 성(性)은 깨달을 수 없고 오로지 보전하여 기른 뒤 정(情)으로 발하는 기미를 잘 살펴 그 정(情)을 현실생활의 이상에 맞게 잘 조절하는 것이 수양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미발함양 이발성찰’(未發涵養 已發省察)의 수양론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정을 조절하는 것은 정의 질료인 기(氣)를 조절하는 것이어서 유가의 마음구조와 수양론에 기론이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가의 심성론이 불가의 본성론인 불성론에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도가의 마음은 도가 사상 존재론 전반을 구성하는 질료인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 도가는 가장 먼저 기론을 도입하여 모든 사물과 현상이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이런 추세는 유가의 이기론으로 이어졌다. 도가의 좌망은 마음이 외부 대상과의 접촉 등으로 탁기(濁氣)로 채워져 있다고 보고, 우주의 청기(淸氣)를 받아들여 마음을 채움으로써 우주 자연과 동질성의 기로써 하나가 되기 위해 탁기의 마음을 말끔히 비워내고자 하는 마음공부법이다.

동양사상 유·도·불가 각각 현실·자연·초월의 범주를 지향하면서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하듯이 유·도·불의 명상 프로그램도 같은 관계에 있다. 유가의 정좌는 바람직한 현실 생활 속에서 인간 개인이 처할 이상적인 자리매김을 찾는 데 목적을 둔다. 도가의 좌망은 인간의 속세를 떠나 완전히 자연과 하나되기, 즉 자연합일을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데 목적을 둔다. 불가의 좌선은 인간과 자연을 초월한 궁극적인 세계, 즉 그 세계를 그려내는 심층마음을 깨닫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세 부류의 명상 방식엔 기본적인 공통 요소가 있다. 그것은 마음이 외부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비롯되는 온갖 사념(思念)을 씻어내는 일이다. 여기에서 명상과 다도의 접점 및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머릿 속 또는 마음 가운데 오랫동안 얽히고설켜 견고한 기억 또는 잠재의식으로 남아있는 사념과 사념의 잔영들을 일거에 지우기란 무척 힘들다. 불가의 좌선에서 ‘백척간두일보’(百尺竿頭進一步)란 말은 사념의 뿌리까지를 지우기가 지난함을 상징한다. 불가 다도에서 나온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은 차를 마시고 명상하는 데서 ‘백척간두일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선일미’의 원뜻은 ‘차명상’과 ‘좌선명상’이 같은 일이라는 의미다. 즉 차 마시는 일이 온갖 잡념 등 사념을 씻고 득도에 이른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지 않고 하는 좌선에서 ‘백척간두진일보’에 이르는 과정의 어려움을 차가 해결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물며 ‘백척간두’에까지는 이르지 않는 유가의 정좌 명상이나 도가의 좌망에서 차의 도움을 받는 일은 정좌와 좌망의 효율을 훨씬 높여주게 될 것이다. 이에 유불도의 선객이나 명상 수양가들은 차를 가까이 하고 ‘수양음료’로서의 차의 덕성을 칭송하는 글을 저마다 남겼다.

한국의 다도는 세계 유일의 ‘수양다도’(修養茶道)로서 조선시대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과 한재 이목의 <다부>(茶賦)에 각각 ‘과정(행위)의 다도’와 ‘경지의 다도’로서 기술돼 있다. <동다송>에는 ‘다도’가 “정성스레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고, 좋은 물을 골라 차탕에 차의 향, 색, 맛을 이상적으로 우려내는 일”로 규정돼 있다. 또 <다부>에는 이런 좋은 차를 마셔서 득도에 이른 경지를 ‘오심지차’(吾心之茶, 내마음의 차)라고 표현했다. 이 ‘한국 수양다도’에는 찻잎을 따는 일에서부터 차를 마시는 전 과정에 동양사상 기론(氣論)에 입각한 수양론적 원리가 전제돼 있다.

차향을 맡고 있는 최성민 필자

한국 수양다도에 사용되는 차는 전통 한국 녹차(綠茶)다. 녹차에는 차의 3대 성분인 카테킨·테아닌·카페인이 적절히 함유돼 있다. 녹차에 차의 3대 성분이 적절히 함유돼 있다는 것은 동양사상 기론으로 해석하면 녹차에 우주의 청신한 기운이 적절히 들어있다는 의미다. 카테킨은 심신건강증진 기능, 테아닌은 뇌파안정 기능, 카페인은 각성 기능을 각각 수행한다. 특히 한국의 온대 소엽종 찻잎에는 테아닌이 많이 들어있다. 테아닌은 뇌파를 외부자극 반응파인 베타(β)파에서 명상시 뇌파인 알파(α)파로 안정시켜준다. 여기에 카페인의 각성작용이 가해져 극히 안정돼 수면시 뇌파인 세타(θ)파에서도 정신이 또렷하여 잡념 없이 사물을 본상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득도의 경지에 들게 된다. 이런 경지를 고려 시대 지눌스님은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 했다. 위에서 한재 이목이 말한 ‘오심지차’의 경지 또한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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