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대한민국 자화상?···황혼이혼·황혼재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요즘은 코로나로 결혼식 주례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 혼인식에서 으레 주례는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며 살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혼인해서 ‘사이좋은 부부는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백년해로는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 또는 ‘생사를 같이하는 부부사랑의 맹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이좋게 지내는 부부는 10% 정도밖에 안 된다니…
그를 반영하듯 <매일경제>의 6월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요즘 황혼이혼의 상담건수가 20년 전보다 8배 늘었고, 황혼재혼도 4년 새 20% 증가했다. 70대 남성 A씨는 최근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돈을 버는 대로 아내에게 맡겼는데 자꾸 사라졌고, 본인 몰래 집을 산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A씨는 상담사에게 “아내는 그렇게 하면서 내가 뭘 하고자 하면 사사건건 반대했다”며 “집에 있어도 눈치, 나가도 눈치였다. 애들도 모두 엄마 편만 든다”고 하소연했다.
이미 여성은 남편의 폭력이나 외도를 더 이상 참지 않고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들도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혼인 건수는 줄어드는 데 반해 황혼 재혼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혼인건수는 21만4000건으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전년보다 10.7% 감소했다. 반면 60세 이상 남녀의 황혼재혼은 9938건으로 전년(9811건)보다 127건(1.3%) 늘었다. 4년 전인 2016년(8229건)에 비하면 20.7% 급증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이혼상담소를 찾는 시니어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소에 접수된 60세 이상 시니어층의 이혼상담 건수는 총 1154명으로 전체 연령대의 27.2%에 달했다. 이 가운데 남성은 426명(43.5%)으로 집계됐다. 상담소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시니어 남성의 상담율이 8.4배 대폭 뛰었다”고 했다.
올해 1분기 황혼부부 1만쌍이 “힘들게 참느니 내 인생 찾겠다”고 한다. ‘황혼이혼’이 1년 새 17% 증가한 것은 신혼부부보다 두 배 이상 많아진 수치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겠다는 전통적 관념이 약해진 것이 원인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80대 여성 A씨는 요즘 중학교 남자 동창 B씨와 교제 중이다. 이혼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 자연스레 ‘연인’으로 지내기로 결심했다. 90대 여성 C씨도 최근 이혼 상담을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젊은 시절부터 외도와 폭행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괴로웠지만, 자녀들에게 피해 갈까봐 참고 살았다고 한다. C씨는 상담 과정에서 “이제껏 참고 살아온 내가 불쌍하다”며 “함께 살자니 고생이고, 이제 와서 안 살자니 창피하다”고 했다. 이처럼 60세 이상 노년층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혼인생활에서 야기되는 괴로움이나 힘듦에도 기꺼이 참았던 노년층이 이제는 개인의 행복을 찾기 위해 ‘황혼이혼’을 택하고 있다. 특히 이혼을 경험했던 이들이 서로를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황혼재혼’을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이혼 건수는 2만5206건으로 전년 동기(2만4358건) 대비 3.5% 증가했다. 특히 혼인 지속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올해 1분기 1만191건, 전년 동기(8719건) 대비 16.9% 늘었다.
이러한 증가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9년(3만8446건)과 2020년(3만9671건) 황혼이혼 건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황혼이혼 수치는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건수(4492건)보다 2배 이상 높았다는 얘기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과 재혼 연령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황혼이혼과 황혼재혼이 점차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개인 가치관과 인식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에는 전통적 의미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불편하고 애로사항이 있더라도 참고 살았지만 현대에는 개개인 생활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권리가 신장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개인 능력을 살린 ‘커리어 우먼’이 증가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