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6·25 종군기자 목타르 루비스를 아십니까?
[아시아엔=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우리는 6·25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도네시아인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았을까? 6·25전쟁의 한복판에 있던 한국인들은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알았을까?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목타르 루비스(Mochtar Lubis, 1922~2004)는 1950년 당시 스물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전쟁 종군기자로 참전하며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시작했다. 목타르 루비스는 인천상륙작전 직후부터 9월 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10월 초 의정부 탈환작전 등 참혹한 전쟁터를 가감없이 기록했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한국인들의 애환을 평화 저널리즘과 인류애의 관점에서 인도네시아에 소상히 전했다.
목타르 루비스는 한국전쟁이 계속되던 1951년 9월 <한국전 종군기>(Catatan Perang Korea)를 인도네시아어로 출판해 인도네시아에 한국의 상황을 알렸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는 상을 수상했다. <한국전 종군기> 출판 동기와 관련해, 목타르 루비스는 “매일 보고 듣는 것이 온통 미국과 한국군의 승전 소식이었다. 한국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보도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인데 정작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적었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감정과 고통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에 관한 기록이 너무 없었다”라고 밝혔다.
목타르 루비스는 한국전쟁이 남과 북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 밖의 강대국들의 다툼에서 시작됐다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남과 북을 갈라놓은 38선의 존재조차 잘 몰랐고, 전쟁이 발발하자 영문도 모른 채 처절한 피난길을 헤매며 온갖 고통과 희생의 전쟁터에 내몰려야만 했다고 기록했다.
목타르 루비스의 <한국전 종군기>(어문학사, 2017)를 번역한 전태현 한국외대 교수는 “열대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방인의 시각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고 느낀 점들을 탁월한 문학적 사유를 곁들여 담아낸 수기”라고 평했다.
목타르 루비스는 <한국전 종군기>를 통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인의 처절한 절규와 고통에 공감하고 전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랐다. 또 인도네시아인들이 당시 한반도 현실에 다소라도 관심을 기울여 봄으로써 한 국가의 지도자가 적대관계에 있는 강대국들 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나라가 어떻게 파멸의 길에 이르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에게도 경종을 울렸다.
한국전쟁을 한반도의 재앙이라고 부른 목타르 루비스는 기관총 탄알이 복부를 관통한 여성을 목격한 후 이렇게 묘사했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이 빠져나왔다. 피비린내와 고름 투성이 상처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간은 이와 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더 험악해지거나 더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내 머리 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 모두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슨 소용? 인간성의 말살이었다.”
당시 한국인이 느낀 ‘혼돈’에 대해, 목타르 루비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국의 이승만이 썩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썩은 것은 정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승만이 파시스트라고 했다. 파시스트는 그가 아니라 경찰이라고 했다. 남한 사람이 잔인하다고 했다. 아니 잔인한 건 북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승만은 미국의 허수아비라고 했다. 아니 이승만이야말로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견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은 한국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으며, 단지 대한민국을 방어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는 이유는 극동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라고 했다. 소련이 북한군의 기동을 지휘했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북한군 진입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했다. 아니 북한군을 증오한다고 했다. 한국인은 미군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니 미군을 싫어한다고 했다. 남한은 정말 잔인하다고 했다. 남한은 민주국가라고 했다.”
‘인도네시아의 행동하는 양심’이라 불린 목타르 루비스는 인도네시아 작가이자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언론인이다. 목타르 루비스는 1922년 인도네시아에서 저명 문필가를 다수 배출한 수마트라섬 서부 도시 빠당(Padang)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도네시아 유력 일간지 <인도네시아 라야>의 발행인 겸 주필로 활약했으며, 현 국영 통신사인 <안타라> 설립에 기여했다. ‘아시아신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아시아신문재단과 국제신문협회 관계로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목타르 루비스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유력 신문이던 <인도네시아 라야> 폐간과 그의 수감이 계기가 됐다. 그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정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독재를 맹렬히 비판한 혐의로 1956년 12월부터 투옥과 연금생활을 10년 가까이 한다. 이후 수하르토 정권은 1968년 <인도네시아 라야>를 복간시켰지만 1974년 1월 말라리(Malari) 사건 보도를 이유로 6년 만에 다시 폐간시켰다. 그는 1975년 2월 또다시 감옥에 가야했다. ‘말라리 사건’은 1974년 1월 15일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의 자카르타 국빈 방문 때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 주도한 반일 시위를 말한다.
한국전쟁 최대 피해자인 한국인들 고통이 목타르 루비스의 기록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국제정치학적 통찰력과 남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목타르 루비스의 묘사는 한국전쟁 이후 70여년 지난 오늘에도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