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지는 후계자 인선과 리셴룽 총리의 장기집권

헹스위킷 싱가포르 부총리 <사진=EPA/연합뉴스>

[아시아엔=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명예회장, 스트레이트타임즈 전 선임기자] 정권계승을 꿈꿨던 싱가포르 여당에 세 가지 변수가 등장했다.

첫째, 여당의 선두주자였던 헹스위킷(Heng Swee Keat) 부총리가 싱가포르 제4대 총리 후보 출마를 포기했다. 둘째, 후발주자인 찬춘싱(Chan Chun Sing) 통상산업부 장관도 총리 출마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셋째, 리센룽(Lee Hsien Loong) 총리는 은퇴를 미루면서 국정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싱가포르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의 계획이 틀어진 것은 지난 4월 8일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2015년부터 재무장관직을 수행한 헹스위킷 부총리는 팬데믹으로 발생한 경제위축과 실업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 받았고, 차기 총리 후보 1순위로도 꼽혔다. 그러나 헹스위킷 부총리는 “내년에 60살이 된다. 70살인 현 총리의 뒤를 잇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며 사실상의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우리에겐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싱가포르를 재건하고 국가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헹스위킷 부총리는 지난 2018월 11월 리셴룽 총리에 의해 인민행동당(PAP)의 제1사무차장에 임명되면서, 정권을 계승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헹스위킷의 돌연 출마포기 선언에도, 모두의 예상과 달리 2인자였던 찬춘싱 장관은 총리직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총리 후보로 신임 로렌스 웡(Lawrence Wong, 48세) 재무부장관, 옹 예 쿵(Ong Ye Kung, 50세) 교육부장관, 데스몬드 리(Desmond Lee, 45세) 국가개발부장관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누가 4대 총리직을 이어받을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완벽해 보였던 인민행동당의 정권계승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고촉통(Goh Chok Tong) 전 총리는 “정권을 계승할 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렇다 해도 현재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촉통 전 총리는 “여당의 지도자들이 뚜렷한 명분 없이 후계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줬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고 전 총리는 싱가포르를 건국한 리콴유 초대 총리로부터 총리직을 계승했고, 후에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에게 넘겨준 바 있다. 그럼에도 고 전 총리는 여당을 옹호하며 “민주주의 체제에서 훌륭한 지도자들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선거가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데 있어 최선의 방법인가”라며 반문했다.

고촉통 전 총리는 “인민행동당은 뛰어난 국정관리를 바탕으로 탄탄한 제도를 구축해왔다. 여당의 성숙한 가치관은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평론가들은 “(인민행동당의 국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라고 지적한다. 정치평론가들의 코멘트를 좀 더 들어보자.

“권력자는 그들만의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행동한다. 권력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후계자를 내세우기 위한 ‘킹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정치적 기반이 없으면 권력자들을 꺾을 수 없다.”

리셴룽 총리는 자신의 부친이자 초대 총리였던 리콴유처럼 호전적이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능력을 지닌 인물을 차기 총리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새 지도자는 치열한 차기 총선을 승리로 이끌 인물이어야 한다. <인디펜던트 싱가포르>의 칼럼니스트 탄 바 바(Tan Bah Bah)는 “2020년 7월 실시된 총선이 헹스위킷 부총리가 차기 총리로 임명될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투표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평했다.

헹스위킷은 베테랑 경제학자이지만, 싱가포르의회에서 중요시 여기는 토론 능력은 다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헹스위킷 부총리는 2019년 11월 마을공동체의 부실 경영과 관련한 국회 토론 도중 갑자기 휴회를 요청했다. 반대 측이 까다로운 안건을 상정하자 직원들의 자문을 구하기 위해 휴회를 신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그의 평가는 크게 하락했다. 헹스위킷 부총리는 재정 정책을 입안하는데 있어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토론 등 임기응변을 요하는 자리에는 부적합해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헹스위킷 부총리의 출마 포기를 예측한 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평론가 체앙 콕 민(Cheang Kok Min)은 2018년 ‘꼭두각시 인형극과 그 실상’(The Puppet Show and Realities of Life)이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인민행동당의 지도부 교체 계획은 여당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며 “이런 폐쇄적인 구조에선 외부 인물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어려울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엘리트 집단의 차기 총리후보군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헹스위킷 부총리는 최선 또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후 헹스위킷 부총리는 총선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기며 차기 총리가 될 기회를 놓쳤다.

변화에 보수적인 여당은 공무원이나 군인 출신 인사를 차기지도자 후보 군으로 고려하고 있다. 여권의 이같은 관행은 민간 부문의 전문직 출신 인재들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정확히 일치했다. 실제로 차기 총리후보군 중 찬춘싱 장관, 옹 예 쿵 장관, 로렌스 웡 장관 3명은 군 또는 공직자 출신이다. 체앙은 “이런 체제 하에서 지도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역량과 업적으로 기반을 다질수 있는 정치인이 등장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지도부 교체는 총리와 여당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과 이런 저런 이유들로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현직 총리는 자신이 계속 정권을 유지하면서 책임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리셴룽 총리가 권좌에 계속 앉아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면 그가 의도한 바인가? 두고 볼 여지가 있다. 번역 김동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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