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 42] “애칭에 대하여”
[아시아엔=김희봉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현대자동차인재개발원, 교육공학박사] 지금까지도 필자를 “김 중아”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무려 24년 전 육군 중위였던 필자와 함께 근무했던 친한 선배다. 시간이 흘러 계급이 바뀌고 전역 후 사회로 나와 직책이나 직급 등이 바뀐 지금도 그 선배는 여전히 이 호칭을 쓰고 있다. ‘김 중아’는 ‘김 중위’를 뜻하는 일종의 애칭(pet name)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애칭은 상대방을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다. 서로 애칭을 쓰는 사람들은 친밀함을 넘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수용성도 높다. 그래서 애칭으로 불리는 사람들 간에는 가벼운 이야기는 물론, 어렵거나 자칫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내용도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애칭이 주로 연인이나 부부, 가족 혹은 친한 친구 등의 관계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애칭은 비단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꽤 오래 전부터 애칭은 사물이나 서비스 심지어는 조직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애칭을 사용하거나 듣게 되려면 해당 제품의 사용자나 소속된 구성원들의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나 사물에 붙여진 애칭은 여러 장점이 있다. 일단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학창시절 친구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당시 별명이나 애칭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제품명도 마찬가지다. 공식명칭은 잘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더라도 애칭은 그렇지 않다.
다음으로 애칭을 사용하면 친근감이 배가 된다. 애칭을 사용하는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강한 연결고리가 있다. 끈끈한 정(情)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 충성도(loyalty)로도 표현된다. 미국 벤틀리대학의 시소디어(R. Sisodia) 교수 등이 저술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라는 책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애칭은 서로에게 심리적 안정감도 줄 수 있다. 공식적인 명칭에 비해 애칭은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데 일조한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대화는 서로의 수용성과 이해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처럼 서로 간에 애칭을 쓰면 좋은 점이 많지만 쉽게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일단 애칭은 불러달라고 해서 불리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애칭으로 불리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일시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과 상당 기간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한다.
서로 간에 거리낌 등이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리낌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여는 것(open mind)이다. 감추는 것이 많고 계산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해서는 거리낌을 줄일 수 없다.
물론 애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억지로 사용할 필요도 없다. 애칭을 만들고 그렇게 부르고 싶어도 쉽사리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변의 시선이나 문화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리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거나,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내 동생’이라는 동요가 있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장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지만 별명은 서너개~’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동요 속 내 동생은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달리 불리어진다.
당신은 어떻게 불리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불리어지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어지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불리기 바라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는 과정이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이고 성찰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물론 변화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