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기자의 코로나19 투병기 “처절한 사투 벌어야 하는 필리핀 국민들”

알린 페레 필리핀 ‘온타겟 미디어’ 기자

[아시아엔=알린 페레 필리핀 ‘온타겟미디어콘셉트’ 기자] 남편과 내가 코로나19로 투병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이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기 바로 직전, 직장 동료들의 확진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집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열은 없었지만, 좀 추웠고 가끔씩 기침이 나오는 정도라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틀 정도 식욕이 없었지만, 이내 돌아왔다. 누웠을 때 호흡이 불편하거나 조금 피곤한 것 빼고는 괜찮았다. 천식과 호흡기 질환을 앓았고 심장에 문제가 있는 등 기저질환이 있었지만, 나름의 대비책이 있었다.

중국인 의사 친구들이 추천해준 중국 전통약 연화청온(Lianhua Qiungwen)을 복용하고, 상사가 준 중국 전통차도 마셨다. 개인적으론 비타민 C와 아연을 다량 섭취했고, 소금을 넣고 끓인 물의 수증기를 들이켜 호흡을 고르게 하는 민간요법도 활용했다.

나는 3월 26일, 다른 가족들은 3월 30일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받았다. 나와 남편, 21살 아들까지 3명이 양성판정을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직장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내가 가족까지 감염시킨 셈이었다. 결과를 받자마자 우린 방을 나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양성판정 받은 3명은 위층 개인방에서, 음성판정을 받은 가족은 아래층에서 지냈다. 필요한 음식과 생필품은 오고 가며 문 앞에 두었다. 우린 핸드폰으로만 소통했다.

그런데 이틀 후, 남편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산소통 비우는 속도가 빨라졌고, 소비량도 갈수록 늘어났다. 남편의 증상이 악화될수록 걱정이 됐다.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춥다고 했다. 식욕마저 잃어 말할 힘도 없어 보였다.

주민센터에 남편의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어야할 직원들의 태도는 형편없었다. 제때 전화 받는 사람은 없었고, 접촉자를 추적해야 한다며 보건소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냐고 물었다. 남편의 상태가 점점 심해지니 격리시설을 가야할지 병원으로 가야할지 말이다. 주민센터 측은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병상이 부족하니 입원하는 것은 힘들 거라 답했다. 대신 구급차를 불러줄 테니 가까운 공공병원이라도 가보라고 했다.

꼬박 하루를 기다렸는데도 주민센터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튿날 수십 번 전화한 끝에 겨우 연결되었다. 가까운 병원으로 보내주겠다고 한 게 불과 어제였는데 주변에 마땅한 병원이 없다는 무책임한 말을 했다. 아무 병원이라도 연결해줄 수 있냐고 부탁하니 직원은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다고 말다.

그 다음날이 되도록 기다렸으나 역시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해 연결되기까지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날 오후 늦게, 올티가스(Ortigas) 지역의 메디컬시티(Medical City)란 병원의 의사와 연락이 닿았다. 의사는 비대면으로 남편을 진료했다. 차분하면서도 꼼꼼하게 질문에 답해주는 의사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의사는 남편이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병원도 여분 병상은커녕 병원 외부의 격리용 텐트마저 꽉 찼다고 했다. 의사는 다른 지역에 분원이 있으니 좀 멀긴 해도 그리로 가라 했다. 당장 쓸 수 있는 병상은 없어도 다른 곳보다 대기 인원은 적다면서 말이다.

전화를 끊고 절망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코로나 때문에 남편이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무서웠다.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남편이 많이 아파요. 저희를 도와주세요.” 자정 무렵, 의사한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마 내일쯤 병원에 자리가 날 수 있으니 오전 일찍 가보라는 말이었다. “오 주여, 제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활절 전날,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클락(Clark)시 메디컬시티(Medical City)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산소통을 채울 정도로 남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얼굴은 창백해지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입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의료진은 차에 타고 있던 우리에게 한걸음에 달려와 남편의 맥박과 호흡 등 바이탈 사인을 체크했고, 난 그 사이 서류를 작성했다.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남편은 치료받기 위한 별도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남편은 곧바로 산소요법과 약물치료를 받았고,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병상은 있었음에도 남편을 간호해 줄 수 있는 의료진이 부족해 병실을 예약하기 어려웠다. 이는 필리핀의 대다수 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진 대부분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병원이나 격리시설에 머물거나, 2주간 자가격리를 하고 있었다. 극심한 피로로 지친 의료진도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남편은 하루 동안 격리용 텐트에서 다른 환자 2명과 머물렀다. 주변의 의료진이 바로바로 조치를 취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부활절 당일 정오가 되어서야 남편은 코로나19 병동으로 갈 수 있었다. 보통 코로나 환자가 있는 방은 방문객이 들어갈 수 없지만, 밀폐된 공간에 있는 남편에겐 내가 필요했다. 의사의 사전 동의 하에 면제대상 서류를 작성하고 입원실에 같이 있을 수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제대로 숨 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산소 수치는 75%까지 떨어졌다. 탈진할 정도로 힘이 빠진 상태라 말을 하긴 어려워 보였다. 당뇨와 고혈압까지 있는 사람이라 더 걱정됐지만 의료진이 신경 써줘서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병원에서 수도권과 인근 지역의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감염병 경보가 심각 단계로 상향된 지역이 늘어난 걸 보면서 코로나19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느꼈다. 환자들이 병원에 갑자기 몰린 이유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필리핀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치료가 절실히 필요한 저소득층 사람들이 눈 앞에 그려졌다. 맞서 싸울 무기도 힘도 없이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닐까? 국가의 리더십은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팬데믹 속의 우리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어야 하는 비운에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 11일 정도 입원해 있는 동안 친인척과 주변지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기도해준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와 함께 해준 많은 이들의 선의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분들을 생각하며 매사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진심 어린 응원이 있기에 우리는 이 난관을 잘 헤쳐 나갈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축복해주시길! <번역 민다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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