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큐레이터’ 최고운 묻고, 최고운 답하다
-글을 쓰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한 보편적인 수단이 말과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글쓰기 활동을 넘어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들여다보고 되새기고 끄집어낼 수 있는 활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고,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큐레이터에게 글은 숙명입니다. 어떤 미술 작품이 왜 고가인지, 숨겨진 의미는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글이라는 수단으로 풀어내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직업이 큐레이터입니다. 필자는 독자들이 예술의 이치를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미술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관심이 증폭되어 근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수준 있는 글로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쓴 글을 동식물에 비유하면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들의 충실한 전령으로, 인도 초기의 민화에서는 지혜로움의 상징인 부엉이. 이처럼 예로부터 부엉이는 어둠에 익숙하다 못해 신기(神技)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율 배반적인 생태 때문에 여러 문화권들 사이에서 공포와 숭배, 경멸과 존경, 그리고 현자와 우자를 동시에 상징하는 이중적인 잣대로 해석되는 매력적인 동물입니다. 필자 역시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입체적인 시각에서 미술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필자의 글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미술에 대한 지혜가 쌓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엉이에 비유하고자 합니다.”
-글 쓰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팁을 준다면.
“글 쓰기란, 명확한 메시지와 정보 전달이 기본이지만, 상황에 따라 길거나 짧게, 쉽거나 재밌게, 전문적인 지식 전달을 위해 무겁거나 진지하게 쓸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마시고, 무작정 써보세요. 단, 글쓰기 중간에 포기만 안 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데에 100시간, 나중에는 50시간, 그 나중에는 10시간으로 줄여지는 본인만의 능력 향상 쾌감을 즐겨보세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경험만큼 진정한 스승은 없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을 많이 써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써야 한다는,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글을 채우지 마세요. 꼭 써야 하는 단어로 글을 채워나가시길 바랍니다.”
-글과 말은 어떻게 다르며, 또 어떤 점에서 같은지요?
“뿌리가 같은 나무에 다른 나뭇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글과 말은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죠. 예를 들어,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고, 메모를 하며 할 일을 정하는 것처럼, 글은 말보다 생각이 정리가 가능한 수단입니다. 반대로 말은 글보다 간단명료하게 명확한 메시지를 연극적인 요소로서 풀어내는 수단이죠. 말은 생동감이 있고, 글은 신중함이 있습니다. 때문에 서로의 장단점을 잘 헤아려 상황에 맞는 수단을 선택해 사용한다면 슬기로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신이 모델로 삼는 글과, 당신이 담고 싶은 글쓰는 이(작가, 저자, 혹은 필자)는? 그리고 그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일수록 흥미롭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죠. 어느 사조를 다루든지 독자들에게 쉽게 읽혀야 합니다. 필자가 처음 대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할 때에 읽었던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책이 떠오릅니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뿐만 아니라 타 분야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는 책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필자 역시 미술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나아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저자 및 필자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글 쓰는 행위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아티스트가 붓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말한다면, 칼럼니스트는 글을 통해 말합니다. 끝이 없는 대양과 같은 미술처럼 방대한 서사에 끈기 있게 몸을 맡기고 있는 아티스트처럼 필자 또한 미술과 친해지고 싶은 독자가 있는 한, 묵묵히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쓴 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며, 그 몇 문장을 소개한다면…
“몇 개 생각납니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관례를 깨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은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요구된다. 기존의 미술계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의미로서의 폐쇄성은 대중들에게 미술의 문턱을 높이는데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의 경제 시스템은 직장인의 지갑에서 나오는 화폐가 어디에 사용될 것인지를 감안해 짜여 있다. 다시 말해 핵심은 대중성이다. 그간의 미술시장의 한계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시도들이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확장되어 컬렉터 및 수집가, 관람객들에게 개방될 때에 풍성하고 높은 문화 수준으로 향유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21세기 글로벌인이지 아니한가.’(칼럼 [최고운의 문화예술] 실속과 기획력, 둘 다 잡은 똑똑한 아트페어’, 이코노믹리뷰, 2019) 다음 문장도 소개한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해 미술이 어떠한 형태와 유형으로 존재할 것인지 깊은 성찰이 그 어느 때부터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이 우리의 삶으로 다가왔고, 엄청난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미술은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관념 또는 의식을 형성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칼럼 [최고운의 문예사색]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내일의 미술을 말하다, 여성신문, 2020)”
-글은 타고난 것, 노력의 산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나요? 그리고 굳이 비율로 따진다면…
“타고난 것이 ‘하나’라면 ‘아홉’은 노력의 산물입니다. 이처럼 글은 노력의 산물입니다. 다듬고 또 다듬어야만 좋은 글이 됩니다. 이제 글은 유명인이나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SNS를 통해 취미, 특기, 개성 등 모든 소재를 갖고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없지만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이란 조건 3가지를 든다면.
“‘글’이라는 것은 읽어줄 독자가 있을 때에 성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을 얼마나 매료시킬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글의 3가지 조건은 의미, 재미 그리고 깊은 감동과 여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독자들은 진솔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글뿐만 아니라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어느 시대에나 먹혔습니다만, 본인만의 진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