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순천시장 인터뷰 2] “순천시, 직접민주주의 메카 만들 것”

허석 순천시장

[아시아엔=인터뷰 이상기, 이주형 기자, 사진 순천시청 제공] 허석 시장의 꿈은 ‘새로운 순천’과 ‘시민과 함께’에 응축돼 있다. 노동상담소와 지역신문 등을 수십년 운영하다 2018년 늦깎이로 순천시 상머슴을 자임한 그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옆에 두고 훗날 자신도 누군가의 사례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전남의 설화와 인물> 속 설화들은 현실로, 인물들은 그의 롤모델로 삼고 있다. <아시아엔>은 허석 시장과 설을 전후해 두차례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두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2021 해룡면 주민자치회 위원 위촉식 <사진=순천시청>

2020년 7월 민선 7기 2년을 돌아보며 <시장실 25시>를 펴냈다. 지난 2년 8개월 동안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이며, 남은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1980년대 초반부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철칙으로 삼아온 게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즉 평등사상이다. 시장도 직함의 하나일 뿐이지 사람 자체가 시장은 아니다. 사람을 직함 또는 직급으로 여기다 갑질이 나온다. 시장 취임 이후 가장 신경 쓴 것 중 하나가 갑질 척결이다. 시민을 주인으로 모신다면서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직함을 내세우는 권위주의 문화를 내려놓고 싶었다. 인사 시즌마다 금품이 오간다는 말도 많았다. 취임 후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직원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도 중점 두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직접 민주주의’ 실천 자치단체장으로 행안부 표창도 받았다. 광장이건, 골목이건, 천막이건 토론이 벌어지는 현장이 있으면 ‘언제나’ ‘무조건’ 달려가 시민들 목소리를 경청했다. 시민과의 대화를 하면서 돌발질문을 거르지 않고 다 받으려 애썼다. 지난해 어떤 시민이 낮술하고 질문하려 하자 직원들이 말리려고 했다. 내가 그냥 놔두라고 했다. 맨 정신으로 하기 어려운 얘기니까 술 힘을 빌어서라도 하려는 것 아니었겠나? 취객이든 어린 아이든 순천 거주자라면 누구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 아테네 시민들이 맘껏 토론하던 아크로폴리스광장처럼 만들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어 아쉬운 점은 없나.
“시민들께서 좀더 자신감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멍석을 깔아놓고 시민들 참여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보면 걸음마를 뗀 아기를 지켜보는 부모 심정처럼 불안한 점이 있다. 시민들 옆에서 지켜보고 도움 드리는 게 우리 역할이다.”

낙안읍성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 것 같다.
“순천에 낙안읍성이 있다. 성곽 안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취임 이후 지역 주민들에게 ‘100% 주민자치권을 드리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초다. 예를 들어 지역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가 우려돼 관광객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 결정을 따르려고 했다. 지역 예산도 전액 전달해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민들이 ‘아직은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공무원들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모든 정책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기에 낙안읍성 관련 용역보고회도 진행하면서 100% 주민자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여러 사항을 연구하고 있다. 순천시는 올해 24개 읍·면·동 전체에서 주민자치회를 출범시켰다. 지난해 3분의1 수준에서 시 전체로 확장했다. 주민들이 ‘필요한 곳에 예산집행해 주어 감사하다’고 하는데 ‘필요한 것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답한다. 반응이 아주 좋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수준까지 우리 시민사회가 더 성숙해져야 한다. 시는 시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재정형편상 원하는 대로만 예산을 집행할 수는 없다. 시민과 함께 논의해서 우선순위 정한 후 적소에 예산을 배치하면 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순천시는 직접민주주의의 메카가 될 것이다.”

‘1인1책 쓰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를 시 차원의 주요정책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순천의 무엇이 세계최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정원의 도시’로 세계최고가 될 수 있을까 했는데 도시 자체가 정원이고 유적인 곳들과 비교해보니까 쉽지 않겠더라. 개인적으로 30권 냈을 정도로 책 쓰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예를 들어 시민 1천명 기준으로 펴내는 책 권수로 따지면 순천이 세계최고가 될 수 있지 싶었다. 그래서 시민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직원들한테도 권장한다. ‘30~40년 노하우를 남겨놓으면 후배들도 시행착오를 덜 겪지 않겠나’라고. 글 안 써본 사람도 말을 녹음해 풀면 글이 되고 책이 된다. 혼자서 쓰기 힘들면 여럿이 함께 쓰면 된다. 책 쓰는 분위기가 형성된 중요한 계기가 순천의 ‘소녀시대 할머님’들이다. 모두 스무 분, 연세 합이 1500~1600세 정도 된다. 글 모르던 분이 글을 배워서 책을 내는데 멀리 미국이나 유럽에 거주하는 출향민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그 뒤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하게 내고 있다. 기네스 기록에도 도전해볼 듯하다. 정약용 선생은 ‘책 한 권 안 내면 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책 쓰기운동은 교육 도시 순천의 명성에도 걸맞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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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은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지만 관광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측면이 있다.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가.
“숙박시설 부족은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려고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관광의 방향성 즉 컨셉을 바꾸려 한다. ‘순천만 무진기행’이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소설 ‘무진기행’ 저자 김승옥 선생께서 실제로 지역에 살고 계신다. 새벽 안개 자욱한 갈대밭을 친환경 전기배로 유람하는 거다. 실무진은 배 운임을 7천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싸구려로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1인당 20만원 받더라도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자’고 했다. 대신 1주일에 한 팀씩 딱 20명, 1년에 많아야 1천명만 받는 거다. 선상에서는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순천만의 특색 담긴 식사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순천만 무진기행’에 매료된 분들이 자발적으로 홍보대사가 되지 않겠는가. 많은 관광객을 무리하게 유치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순천만 관광의 질적 변화를 꾀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긴 했지만 현재의 국가정원 분위기도 참 좋다고 본다. 국가정원은 ‘여유’ ‘멈춤’ ‘힐링’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공간이다. 그런 것이 순천 관광의 컨셉이 돼야 한다. 관광객 수를 조절하면 숙박시설도 약간만 보강하면 된다.”

이즈미시와의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허석 순천시장

코로나19 이후 국가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비대면 미팅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순천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해외 도시는 어디이며 어떤 교류를 하고 있나? 또 올해 신규 계획은 갖고 있는가.
“순천은 현재 일본의 이즈미, 중국의 닝보, 타이위안, 미국 미주리주의 콜럼비아 등의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면 교류가 중단된 상황이지만, 일본의 이즈미시 등 자매도시와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코로나19로 연기된 동아시아 문화도시와 관련해 일본의 기타큐슈시 등과도 화상회의를 했다. 비대면 교류는 더 활발해졌다. ‘202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대비한 세계정원 리뉴얼을 위해 자매도시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베트남, 중국 등에서 요청해 온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상호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좌우명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해야 할 일은 미리미리 하자’이다. 어렸을 때 방학 동안 실컷 놀다가 개학 앞두고 밀린 방학숙제를 한꺼번에 하려면 부담이 된다. 방학숙제를 다하지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있다. 그런 부담과 불안을 덜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미리미리 하려고 한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는.
“윌리엄 윌버포스를 존경한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의 추악한 노예무역을 폐지하는데 한 몸 바친 위대한 정치인이다.”

평소 자주 떠올리는 단어 5가지를 소개해 달라.
“삶과 죽음, 미래, 창조, 파괴”

마지막으로 2021년 순천시 역점 시정은 무엇인가? 또 그 이유는? 이를 실천해낼 방안은 어떤지 궁금하다.
“E4 시티 기반 조성이다. 전통적인 교육의 도시인 순천의 교육(Education)을 중심으로 그동안 순천시민이 가꿔온 생태(Ecology)를 경제(Economy) 활력으로 이어가고자 ‘3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 기술을 초융합하여 E4 시티를 선포했다. 4차산업혁명 박람회인 ‘2021 NEXPO in 순천’ 개최와 E4 시티 실현을 위한 클러스터단지 조성 등을 통해 미래형 생태경제도시로 만들 계획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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