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고질병 ‘불가촉천민 성범죄’가 던진 질문들

2020년 10월 인도 뉴델리에서 불가촉천민 여성 성폭행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대 <사진=AP/연합뉴스>

[아시아엔=닐리마 마투 인도 <스팟필름> 대표] 지난해 9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에서 발생한 달리트 계급(불가촉천민)의 19살 여성 집단 성폭행 살인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당국의 엉성한 사후관리와 후속조치 탓이다.

당국은 한밤중에 엉망이 되어버린 피해자의 시신을 화장했다고 전해졌으나, “피해 여성의 시신은 보존되어 있다”며 “화장된 것은 다른 시신”이라고 밝히며 논란은 커졌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지점이 있다. 힌두교도들은 관습상 화장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밤에 이뤄진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사건은 여러 의문점을 남긴 채 미궁에 빠질 우려가 크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인도 언론은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강간이 정말 이뤄진 했는가?’ ‘화장 과정에 유가족이 참관했나?’ ‘순수 강간죄?’ ‘부검 과정에서 질 내부 검사는 이뤄졌는가. 그렇다면 상처는 발견됐나?’

만일 피해자가 상류층 출신이었다면 이런 질문들이 나왔을까? 21세기가 20여년도 더 흐른 오늘날, 인도 언론이 하층민을 어떻게 대하고 이들의 인권을 어떻게 침해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주류 언론들조차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소셜미디어의 이슈에 주목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대로 훈련 받지 않은, 기자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을 퍼나르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데 훼방을 놓고 있다. 하층민 19살 여성의 억울한 죽음은 대중들의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무분별하고 무책임 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인도에선 불가촉천민 여성이 하루 8명꼴로 강간을 당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으며,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 2억 5천만명의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여기에서 불가촉천민 여성 500명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이나 속보로 보도된 적은 한번도 없다. 무관심 속에 묻혀 잊혀지거나, 이번처럼 과도한 오보로 피해자에게 또다른 고통을 줄 뿐이다.

인도에선 지난 10년간 강간사건이 50% 증가했다. 그런데도 2019년 불가촉천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사건은 단지 11%만 신고됐다. 불가촉천민 여성들은 피해를 입고도 자발적으로 신고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들은 신고로 인한 부차적인 고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인도의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세계 각국의 강간 범죄율을 조사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강한 스웨덴이 6위를 기록한 반면 인도는 1.8% 수준으로 10위권 밖인 것으로 나타났다. 1.7%의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믿기 어려운 수치는 앞서 언급한 인도의 사회 분위기와 연관성이 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성범죄 문제,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Beti Bachao, Beti Padhao”(Save Girls, Educate Girls, 소녀들을 지키고 소녀들을 교육하자)라고 외친 바 있다. 우리는 더 나아가 “Samaaj Uthhao, Beti Bachao”(Uplift Society, Save Girls, 사회의식을 바꾸고, 소녀들을 지켜야 한다)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대중의 각성이 시민운동가, 행정부, 미디어 등의 일시적인 선전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우타르프라데시주 하트라스시에서 발생한 19살 여성 강간살인 사건을 논하는 언론 보도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주사위는 대중과 사법부에게 넘어갔다. 대중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법부의 소신 있고 신속한 재판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여성만을 위함이 아니다. ‘유대인은 불결하다’라는 왜곡된 인식이 편견을 키워 대량학살을 불러온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일부 집단을 둘러싼 그릇된 인식은 인류 역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 왔다.

인도인에 계급이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불가항력의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전제로 한 하층계급에 대한 편견이 정당화돼선 안된다. 평등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인식의 전환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불가촉천민 여성들의 인권 향상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는 이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조금이나마 사회의식을 개선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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