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신분제 ‘카스트’, 스스로 무너지나
필자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945년 영국작가 조지 오웰은 우화소설 <동물농장>을 썼다. 그 소설에서 가장 유명하고?널리 인용되는 말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것들에 비해 더 평등하다”라는 부분이다.?이 말은 정치적인 뜻을 담고 있다.
동물의 세계를 잘 관찰해 보면, 그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자연적 계급 체계가 있다.
현대사회도 가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에서 똑같은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선출된 인간들이 이익을 독점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강한 자들을 섬기도록 돼 있다. 단지 동물의 세계와 차이가 있다면 약자가 강자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지배구조는 똑같다.
고대 인도사회는 동물의 세계보다 좀더 명확히 구분되고 잘 조직화 돼 있었을 뿐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계급이 구분돼 있었다. 신과 접촉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고 ‘브라만’이라 불렸다. 그는 모든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또 가장 강하면서 부하들을 데리고 전쟁에 나가 싸우는 사람은 왕으로서 사회를 지배했고 ‘크샤트리아’라고 불렸다. 자연히 그는 브라만을 통해 신과 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다.
왕이 돈을 걷기 위해 필요한 일반인들과 왕을 대신한 장사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바이샤’라는 계급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마지막 계급에는 청소나 막노동을 하는 사람과 하인 그리고 구두수선공, 대장장이, 세탁업자 등 숙련공이 속했다. 이들은 ‘수드라’로 불렸고 카스트의 맨 아래 상대못할 천민으로 취급됐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계급 의식은 뿌리깊게 남아 있다. 90살인 필자의 어머니는 집 화장실을 청소하러 오는 여성에게 차를 줄 때는 꼭 머그잔을 사용해야 하고 그 잔은 실수로라도?가족 중 누가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별도로 보관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각자 태어나면서 정해진?직업에 종사하며 산다는 인도 사회의 계층제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완벽해 보였다. 또 계층간 존재하는 상당한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는 지난 몇백년 동안 잘 지켜져 왔다. 그래서 약자는 약자만을 낳고 지배자는 지배자만을 낳고 또 승려들은 승려만을 낳는 제도가 이어져 왔다.
이 제도는 인도를 식민 지배한 영국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왕부터 힘없는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상하관계가 분명한 사회구조이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쉬웠다. 억압은 약자들이 강자들의 잔혹 행위나 착취에 반발할 때까지 계속할 수 있었다.
간디는 인도사회 최약자 계층의 권익을 옹호했고 그가 선봉에 서서 이룩한 독립은 혼란스러웠다. 독립 인도의 새로운 헌법은 수드라의 권리를 보호하고 상위계층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권력과 힘을 가진?사람들은 이 평등사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 천년에 들어선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최하류층 사람들은 사회에서 보다 넓은 활동 영역을 요구하고 있고 반대로 힘센 자들은 하층민들을 계속 억압하려 하고 있다.
그 억압이 무서운 형태로 각 가정에 파고들고 있다. 인도의 젊은 여성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청년과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 그 여자나 상대 남자 혹은 둘 모두는?두 가정 중 한쪽에게 살해당하는 경우가 한 해 수백건이 넘는다. 이 현상은 현대 인도 사회에 ‘명예살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강력한 법률 제정에도 불구하고 명예살인은 계속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수 백 가정이 이와 관련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는 하층 약자들은 계속 사회 밑바닥에 남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며 “현재의 내 특권을 현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자식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하겠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작년에 인도 대법원은 한 명예살인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이것은 완전히 불법이며 엄격히 뿌리 뽑아야 할 범죄다. 명예살인이나 다른 가혹 행위는 명예로운 행위가 아니라 야만적이고 수치스러운 살인행위에 불과하다. 또한 옛 농노주의적 사고로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다른 어떤 잔학 행위도 엄히 처벌돼야 마땅하다.”
인도 국가범죄기록국과 내무부 집계에 의하면 1989년 제정된 하층민 학대 방지법에 의거해 하층민 잔학행위로 경찰에 신고된?건수는 연간 2007년 2만9825건, 2008년 3만3363건, 2009년 3만3426건으로 나타났다. 신고건수가 해마다 증가세를 보인 것은?법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의 노력과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알고 있듯 통계는 사회과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에 유리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2009년 신고된 하층민에 대한 잔혹행위가 3만3426건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10억명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이 정도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이상한 사건 정도일 뿐이다. 아마도 길에서 사고로 죽는 사람이나 전국에서 강간 당하는 건수가 그 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어떤 민주국가에서나 모든 사람은 평등한가?’라는 것이다. 분명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이다. 어떤 아이는 부자집에 태어나 런던으로 유학 가 석사학위까지 딸 수 있는가하면 또 어떤 아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동네 변변치 못한 학교에도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이 두 아이가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같은 직업을 놓고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는가?
수백년 전부터 행해져온 하층민에 대한 억압과 착취 문제가 인도 사회에서 해결되기도 전에 부자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다음 세대를 위해 최고 중에서도 최고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소외된 하층민들은 더욱 소외되고 있어 복잡한 도시에서 자신들의 천한 신분을 지워 버리려 힘겹게 노력하고 또 카스트 제도의 오욕과 자식들에게 평등한 삶을 물려줄 수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저주스러움을 팽개치려 한다.
지금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90세의 필자 어머니도 매일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목욕시키고 은밀한 부분까지 닦아주고, 또 음식까지 먹여주며 돌보는 두 간병인 여성의 카스트가 무엇인지 감히?물어보지 못한다.?어머니는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고 또 ‘카스트 없는’ 두 여성은 자기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돈벌이가 필요하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이렇게 스스로 말살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없애기 위에 법을 제정할 필요도 없다. 다윈의 이론이 다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이상적인 평등사회는 소외된 계층에 특혜를 주는 장치를 마련해 하층민, 상류층, 부자, 가난뱅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윈의 생존 이론이 작동하는 것이다.
번역 선재훈 기자?sword@theasian.asia
*원문은 아시아엔(The AsiaN) 영문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theasian.asia/?p=15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