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가을 法語’ 장석주
태풍 나비 지나간 뒤 쪽빛 하늘이다.
푸새것들 몸에 누른빛이 든다.
여문 봉숭아씨방 터져 흩어지듯
뿔뿔이 나는 새 떼를
황토 뭉개진 듯 붉은 하늘이 삼킨다.
대추 열매에 붉은빛 돋고
울안 저녁 푸른빛 속에서
늙은 은행나무는 샛노란 황금비늘을 떨군다.
쇠죽가마에 괸 가을비는
푸른빛 머금은 채 찰랑찰랑 투명한데,
그 위에 가랑잎들 떠 있다.
……몸 뉘일 위도에
완연한 가을이구나!
어두워진 뒤 오래 불 없이 앉아
앞산 쳐다보다가
달의 조도照度를 조금 더 올리고
풀벌레의 볼륨은 키운다.
복사뼈 위 살가죽이 자꾸 마른다.
가을이
저 몸의 안쪽으로 깊어지나 보다.
이 시는 김성남 독자가 추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