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빨리빨리’ 벗고 ‘저활성 사회’로?
[아시아엔=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코로나사태’가 약간씩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나 이란, 미국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어서 걱정은 여전하다. 예방, 검사, 확진, 완치 또는 사망으로 이루어지는 감염병 관리 체계에서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독특한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예방수칙준수, 검사능력과 실적, 그리고 낮은 치명률 등에서 독보적인 지표를 나타내자 세계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보 투명성과 관리 효율성을 주목하고 있다. 지역 봉쇄와 같은 강권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권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공포와 혐오 대신 연대로
이번 코로나 사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인종주의적 혐오와 세계시민적 연대의 길항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경우 초기 국면에서는 중국인들이 주로 혐오 대상이 되었다. 이들의 입국금지를 일부 보수정치권에서 강하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끝까지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번째 국면에서는 신천지교회의 무언가 숨기는 듯한 행태가 비난의 표적이 되면서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이나 몇몇 요양원이 방역의 가장 취약 장소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 수 급증으로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광주가 내민 손길은 일종의 청량제였다. ‘달빛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진 병상 나눔 운동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구로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열악한 작업환경을 가진 노동현장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장소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수도권에서의 확산도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아무리 급박한 위기상황이더라도 은폐보다는 투명한 공개가, 혐오보다는 연대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는 일찍이 수용소와 같은 총체적 제도(total institution)와 집단적 오명에 대한 사회적 원리들을 탐구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비대면 상황이나 사람들간의 물리적 거리가 갖는 사회적 의미의 중요성을 밝혔다. 물론 그가 감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늘 착용해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시대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고활성 사회에서 저활성 사회로
이번 코로나사태는 우리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에피스테메(인식론적 틀)는 성장론적 발전사관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 이것은 도전할 수 없는 규범이 되었다. 사회는 항상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상정되었고, 국가가 규정하는 질서를 비판하거나 회의적 시선을 보내면, 그 사람은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우리는 처음으로 IMF 구제금융사태에서 경제가 수축되거나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국난 극복이라는 개념도 등장했지만, 특히 청년들은 국가가 부여하는 규범이 오류일 수도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부터는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도 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제의 영역에서, 두번째는 정치의 영역에서 발전의 신화가 깨졌지만, 사회의 영역은 그나마 신화가 유지되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빠르게 움직이며, 어슬렁거리거나 쉬는 것을 싫어하는 사회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좁고 빽빽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사회였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였을까.
필자는 이런 특징을 가진 사회를 ‘고활성(高活性) 사회’라고 부르려 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처음으로 그것과는 반대인 ‘저활성(低活性)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생산과 교육의 공간들이 폐쇄되고 생활공간은 개별화되고 있다.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이 축소되는 초유의 경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럴수록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세계적 공황까지는 아니더라고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정부가 앞장서서 준비해야 한다. 전주시가 시행하기 시작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코로나 긴급재정지원’이 예사롭지 않다. 아울러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