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김훈 “김용균 겪고도 산재사망 일상화···연 2000명 숨져, 기업가정신 어디갔나?”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열린 ‘김용균이라는 빛’ 백서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소설가 김훈이 직접 써온 글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엔=편집국] 김훈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작가, 전 한국일보 기자)는 지난 24일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현실에 대해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김용균이라는 빛> 북 콘서트에서 ‘빛과 어둠’이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했다. <김용균이라는 빛>은 지난해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고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 이후 62일간 진행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엮은 책이다.

김 작가는 “죽음조차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나와 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해간다”며 “세상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하면 인간은 이념의 진영에 갇혀서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김용균의 빛은 비록 작지만,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들을 회복시켜주는 호롱불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아래는 김훈 작가의 글 전문이다.
김용균씨 생전 모습 뉴스타파 화면 <사진 발전비정규연대회의>

젊은 노동자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를 점검하다가 벨트에 몸이 말려들어가서 죽었다. (2018년 12월 10일) 향년 24세에, 결혼하지 않았다. 김용균은 하도급업체의 신입사원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들어간 첫 직장이었다. 김용균은 신규채용자 기본교육 2일, 직무교육 3일, 모두 5일의 교육을 받고 현장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날 김용균은 선임자 없이, 혼자서 작업했다.

김용균의 시신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머리는 롤러 위에, 몸통은 벨트 아래 떨어져 있었다. 현장을 돌아본 김용균특조위(위원장 김지형)는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위원회의 심정도 깜깜했습니다”라고 보고서의 서두에 썼다. 발전은 빛을 얻자고 하는 사업인데 발전의 원료인 석탄은 캄캄했고, 그 석탄을 빛으로 바꾸는 과정의 노동현실은 더욱 캄캄했다.

김용균이 죽은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이 살아나서 깜박거린다. 그 빛은 이윤과 제도가 인간의 생명을 압살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노동의 빛이다. 김용균의 빛은 아직은 여리고 희미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 암흑 속의 빛을 알아보고, 두렵고 귀하게 여겨서 빛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져가고 있다.

오늘의 이 모임은 김용균특조위가 발간한 진상조사 결과 종합보고서의 의미를 여러 사람이 공유해서 김용균의 빛을 확산시키는 자리이다. 이 보고서는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현장을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자본과 노동, 공공기관과 노동하는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제도적 문제는 모든 생산, 건설의 노동현장에 두루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추락, 압착, 매몰, 붕괴, 폭발, 중독, 질식, 충돌, 익사처럼 재해의 원인은 매우 원시적이고 반복적이다. 김용균은 목과 머리가 분리되어서 죽었지만, 간과 뇌가 으깨져서 땅바닥에 뿌려지고 몸통이 터져서 흩어지고 팔다리가 꺾이고 부러져서, 노동자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일터에서 일하다가 일터에서 죽는다. 사고로 죽고 골병들어 죽는다. 동료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일하다가 죽는다. 이것이 일터인가. 지구상에서 이러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반도체를 못 만들고 자동차를 못 만드는 나라들도 이처럼 야만적이지는 않다.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죽음조차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나와 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해간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하면 인간은 이념의 진영에 갇혀서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지금 김용균의 빛은 비록 작지만,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들을 회복시켜주는 호롱불로 확산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장구한 세월 동안 거듭되는 구조적 문제로 사기업이나 공기업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 무한경쟁, 책임면탈을 지적하고 있다. 하도급업체가 노동자의 급여를 해마다 30% 이상씩 떼어먹었다는 보고도 충격적이다.

이윤의 추구는 기업의 본래 그러한 모습이고, 모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하지만 인간은 비록 밥줄이 시장에 얽매여 있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산다. 경쟁과 이윤추구, 비용절감이 시장의 진리라고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는데, 시장은 시장의 작동방식이 빚어내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해결하지 못하는 까닭은 시장은 그 문제를 시장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경영자단체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기업하기가 어려운 조건은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고, 법인세가 너무 많고, 안전 규제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죽어나가도 그 책임은 모두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기업 오너나 고위 임원들이 일반 직원보다 백 배 이상의 급여를 가져가면서 법인세와 상속세를 깎아달라고 하면 반기업 정서는 저절로 일어선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가. 책임과 규범을 벗어던져야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가. 김용균의 빛은 묻고 있다. ‘죽음의 일터’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기업가 정신은 왜 없는가.

내년에 또 노동현장에서 2000명 이상 죽는다. 후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날마다 해마다.

고 김용균씨 모친 <사진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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