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7일] 1895년 미국, 대만과 한국 일본에 넘겨

2008년 LA공항, 알몸투시기 가동

2008년 4월17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은 항공기 탑승객의 옷을 투시해 알몸이 드러나는 전신 검색기를 도입,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강행된 조치다.

미연방 교통안전청(TSA)은 보안검색 전신 검색기 1대를 도입, 델타항공이 이용하고 있는 LA국제공항내 5번 터미널에 설치하고 추가 보안검색이 필요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이날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LA공항은 애리조나 피닉스의 스카이하버국제공항에 이어 미국에서 2번째로 스캐너를 도입한 공항이 됐다.

‘밀리미터파(波) 화상기(millimeter wave imaging)’라고 부르는 이 검색기는 높이 2.7m, 폭 1.8m의 공중전화 부스 모양으로, 대상자의 신체를 흑백 영상으로 보여줘 무기류나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한 눈에 알게 해준다.

지금까지 공항에서는 기존의 검색대를 통과한 승객 가운데 추가 검색이 필요할 경우 보안 직원들이 일일이 몸을 더듬는 방식으로 검사를 실시해왔다. 투시기를 사용하면 몸에 손을 대지 않고도 신속하게 검사가 가능하다.

인권운동가들은 신형 검색기를 이용할 경우 탑승객의 가슴이나 근육 등 신체의 윤곽이 3차원 영상으로 보여짐으로써 나체 상황에서의 몸매를 노출시키는 것과 같다면서 도입을 반대했었다.

2007년 인천 2014년 아시안 게임 유치

2007년 4월17일 쿠웨이트시티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26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경쟁도시 뉴델리(인도)를 누르고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개최지로 결정됐다. 인천은 45개 회원국 대표 투표에서 과반인 32표를 얻었다.

이로써 한국은 1986년(서울)과 2002년(부산)에 이어 세번째로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를 유치하게 됐다. 이날 총회에서는 아시아대회 수영 5개 부문 금메달리스트 최윤희,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여자복식 금메달의 현정화, 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등이 직접 등장, 극적 효과를 높였다.

투표 직전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서 인천은 스포츠 약소국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인 ‘비전 2014’와 함께 참가 선수단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제공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다. 항공료와 숙박비 제공은 뉴델리가 이미 내놓은 제안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뉴델리는 참가국 당 20만 달러의 지원금을 별도로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으나 OCA 회원국들은 인천의 손을 들어줬다.

2004년 하마스 최고 지도자 란티시 암살

2004년 4월17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단체인 하마스 최고 지도자 란티시를 암살했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단체인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압델 아지즈 란티시는 이날 저녁 이스라엘군 헬기의 미사일 공습을 받았다.

란티시는 이날 경호원들과 승용차를 타고 가자지구 셰이크 라드완 마을 인근을 달리다가 이스라엘 헬기의 공격을 받았다. 란티시는 피격 후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5분 만에 숨졌다.

란티시는 이에 앞서 한달 전인 3월22일 하마스 창설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암살당한 뒤 최고 지도자로 선출됐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투쟁을 선언했었다.

야신에 이은 란티시 암살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만명의 분노한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란티시 표적 암살 공격이 성공한 뒤 “야신을 살해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국제사회 앞에서 저지른 냉혈 범죄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강경정책을 묵인해준 것이 란티시 암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하마스 고위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사진)는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공언했다. 이스마일 하니야는 2년 뒤 팔레스타인 총리가 됐다.

1993년 터키 투르구트 외잘 대통령 급서

1993년 4월17일 투르구트 외잘 터키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향년 66세. 외잘 터키 대통령은 1983년 총리로 당선된 후 지금까지 통치기간 중 침체에 빠진 국가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미국 주도의 서방동맹국을 지지하는 등 말년의 지나친 월권행위로 인해 국민적인 반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1988년 극우분자의 권총 공격을 받는 등 두 차례나 생명의 위험을 모면한 바 있다.

개혁성향의 경제학자 출신인 외잘은 세계은행에서 근무했고, 1970년대에 당시 술레이만 데미렐 총리에 발탁돼 국가계획기구 책임자를 맡았었다.

1983년 수상에 선출된 뒤 터키에 전면적인 시장개혁 정책을 도입했다.

1975년 크메르 루주의 프놈펜 장악

1975년 4월17일 크메르 루주가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켰다. 인류 역사의 치부로 평가받는 대학살극 ‘킬링필드’다.

캄보디아 학살 현장인 프놈펜 외곽의 초응엑(치응아익), 고문과 학살이 자행된 투얼슬랭 수용소 등에는 아직도 수백여기의 유골, 고문기구들이 남아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한 크메르 루주는 미국을 등에 업은 론놀 정권을 무너뜨렸다.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1925~1998)는 급진적이고도 광적인 ‘개혁’을 주도한다. 농업개혁을 한다며 프놈펜 등 도시지역 주민들을 농촌의 집단농장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지식인층과 고급 기술자들은 기회주의자로 분류해 숙청을 단행했다.

1979년 1월 베트남군이 전복할 때까지 크메르 루주의 ‘잔혹한 실험’이 이어졌다. 4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중 무려 150만명 이상이 살해되거나 굶주림, 고문, 강제노동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2012년 4월 현재에도 캄보디아에서는 캄보디아 정부와 유엔이 ‘캄보디아내 특별재판부’란 이름의 국제전범재판소를 설치, 킬링 필드 주역들에 대한 재판을 하고 있다.

1971년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 선포


1971년 4월17일 파키스탄 중앙정부와 대립해 내전을 벌여온 동파키스탄 해방세력이 방글라데시(벵골어로 ‘벵골인의 나라’를 뜻함)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에 의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ㆍ독립됐지만 그 내부 또한 종교를 달리한 동ㆍ서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있었다.

벵골 애국주의자들은 1971년 3월26일 서파키스탄군의 유혈 진압에 맞서면서 방글라데시 독립이 예고돼 있었다. 서파키스탄으로부터 1600km 떨어진 동파키스탄은 주민이 벵골인임에도 벵골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지 않는 등 서파키스탄으로부터 차별을 받아왔다. 이 차별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동파키스탄인(벵골인)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서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동파키스탄인(벵골인)들은 ‘아와미연맹’을 결성했다.

1970년 12월 파키스탄 제헌의회 선거에서 아와미연맹이 ‘동(東)’파키스탄의 자치를 쟁취하기 위한 6개 항목의 제안을 공약으로 내걸어 압승, 비로소 동파키스탄 독립의 계기를 마련했다.

1895년 청나라 시모노세키 조약 조인, 타이완 일본에 할양

1895년 4월17일 당시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이던 청나라와 일본은 미국의 중재로 휴전협정에 들어갔다. 마관조약(馬關條約)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동학농민운동을 평정하기 위해 조선에 원병한 청·일 두 나라는 남의 땅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그 전선(戰線)이 만주까지 확대됐다. 청나라가 연거푸 패했다.

그러자 미국이 중재에 나서 1895년 2월1일부터 휴전, 강화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양국은 3월30일 우선 6개 조항의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휴전기간 동안 강화협상을 진행, 4월17일 전문(全文) 11개 조항의 강화조약, 각 3조항의 의정서(議政書) 및 별약(別約), 2조항의 추가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인정됐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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