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시아 최초 민영 소망교도소···”수형번호 대신 이름 불러주니 너무 고맙죠”

금속 공예 작업을 하고 있는 소망교도소 재소자의 두 손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양재영>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이 글을 마무리 하는데 30여년 전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이 밝혀졌다는 기사가 온통 인터넷을 도배했다. 범행당시 20대 후반이던 범인은 “1994년 1월 청주시 흥덕구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당시 20살)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숨지게 한 다음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강간·사체유기)로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으로 지방 어느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라고 한다. 1986년부터 발생한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91년 봄까지 최소 10명의 희생자를 냈다. 필자는 1990년 11월 9번째 사건 당시 현장과 화성경찰서 그리고 2003년 상영된 <살인의 추억>을 관람하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몇 년 전 가까운 지인이 “여주에 민간교도소가 있는데, 기자들은 그런 건 눈에 잘 안보이나 봐” 하고 툭 던지듯 말했다. “교도소가 다 같은 교도소 아닌가?” “직접 가보시면 알아요. 그런 곳이라면 살고 나와도 좋을 것 같아.” “생각해볼 게.”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그곳이 생각났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주소망교도소’였다. 법무부가 정부예산의 90%를 지원하고 위탁은 재단법인 아가페에서 운영토록 하는 것이었다. 이사장은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가 맡고 있는 걸로 나왔다. ‘명성교회라?···’ 기자는 지난 2~3년 ‘명성교회 세습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몇차례 써온 터라 취재허락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가 연락해 왔다. “형, 김삼환 목사께서 흔쾌히 승낙했어요. 팩트만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네요.”

소망교도소는 내부에 가족면회실을 두어 간단한 식사와 담소를 나눌 수 있게 했다. 교도소측은 “가족 회복은 재소자들이 출소한 뒤 사회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재범을 예방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사진 양재영>

8월 26일 이른 8시 신사역에서 판교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경전철 여주역에서 내리니 9시 조금 지났다. 기자는 미리 스크랩해 놓은 소망교도소 관련 기사들을 주욱 읽어내려갔다. 그다지 많지 않은 기사는 행사 소개가 대부분이다.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어떤 종편의 기사들은 모두 부정적·비판적인 것이었다.

미리 기다리던 양재영 주무와 교도소로 가는 도중 관련 기사들에 대해 물었다. 양 주무의 대답은 많이 참고가 됐다. 40분 가량 달리니 정문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여느 교도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태영 총무과장의 안내로 권기훈 소장 방에 들어갔다. 권 소장은 2016년 12월 서울교정청장을 끝으로 교정직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2018년부터 3대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소망교도소 권기훈 소장(왼쪽)이 재소자들이 만든 수제공예품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사진 양재영>

-제2의 삶인데 재미있습니까?
“보람이 많습니다. 가장 아쉬운 건 이런 시설이 더 생겼으면 하는 거지요.”

대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와의 인터뷰 가운데 소망교도소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정리했다. “아시아 유일의 비영리 민간교도소다. 미국엔 민간교도소가 많은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도 있다. 다른 교도소에 있다가 형기 1~7년 재소자 가운데 법무부 심사를 거쳐 이곳으로 온다.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이 65% 정도, 그 외 사기, 성범죄 관련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전국 교도소에 5만4000명 가량이 복역중이다. 구속률이 높고 교정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이 문제다. 교도소는 범죄에 대한 응보보다 교정·교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교도소에서 용기를 얻고 사회에 나가서 재기하는 데 발판이 될 무언가를 가져가도록 하는 게 우리 교도관이나 직원들 생각이다.

교도소 본관 앞에 조성된 간이공원. 시골마을을 복원한 듯한 이곳은 재소자들이 외부로 나갈 때 마주치는 첫 공간이다. <사진 양재영>

400명 정원의 우리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이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통해 한사람이라도 더 가석방돼 나갈 때 기쁘다. 소망교도소 직원 신우회가 주축이 되어 매년 3월과 8월 ‘소망 홈 축제’를 열어 소망교도소 출소자들을 초대하여 출소 후의 갖가지 이야기들을 나눈다. 한마디로 홈커밍데이이다. 이 행사를 기다리는 출소자들도 많다고 한다. 지난 8월 성남에서 열린 행사에는 출소자, 직원, 자원봉사 등 40명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재소자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와 기술 및 어학습득 기회 제공 등의 소프트웨어와 식사 메뉴를 직원들과 같은 걸로 하며 교도소 시설을 꾸준히 개선하는 등의 하드웨어를 늘 업그레이드 시켜 재소자들이 만족하는 것 같다.”

권기훈 소장은 그러나 안타까운 게 있다고 했다. 그는 “출소 후 이들이 겪는 사회의 냉대와 차별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이런 점까지 재소자들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했다.

재소자 사동 1층에는 열대어를 키우는 어항이 있다. 교도소측은 “유리로 된 물건들은 배치하지 않는 게 통상 원칙이지만, 생명에 대한 외경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설치했다”고 말했다. <사진 양재영>

소망교도소는 내년 12월 개소 10년을 맞는다. 재소자 정원이 400명, 교도관과 행정직 직원 120명 등 모두 520명이 여주시 북내면 외룡리 한 울타리에서 한 솥밥을 먹고 있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의 기고문에 따르면 소망교도소에 있다가 나간 사람들은 재범율이 다른 곳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기자는 소장 인터뷰를 마친 후 식당으로 이동했다. 가능하면 재소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싶어서였다. 수감시설 안에 있는 식당에 가는데 핸드폰은 프런트 직원에게 맡겨야 했다. 낮 12시 조금 전부터 시작한 식사는 자율배식이었다. 먹고 싶은 만큼 식판에 담을 수 있는데, 이날 메뉴는 흰쌀밥에 닭고기, 들깨북어국, 콘샐러드, 김치 등 4찬이었다. 원래 점심 식비는 직원 2600원, 재소자 1500원으로 책정돼 있으나 소망교도소는 직원·재소자 구분 없이 같은 메뉴의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권기훈 소장을 발견한 재소자들은 쭈볏쭈볏 않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자네도 괜찮아?” 사실 통일된 복장만 아니면 여기가 교도소인지, 일반식당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존중’은 이곳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이동하며 매일 마주하는 두 글자다 <사진 양재영>

식사 후 수용동으로 연결되는 복도를 지나오는데 추상화에 가까운 것에서 정물화류의 그림들과 “尊重 配慮”(오늘의 한자) 같은 경구가 나타났다. 그 중 하나가 눈에 확 띈다. “내가 웃으니 당신도 웃네요” 소망교도소에서 개최한 ‘좋은 문구 공모전’에 입상한 한 수용자의 문구라고 한다. 그렇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출소를 앞둘 때 외는 웃을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방금 식사 때도 봤듯이 이들은 그 웃음을 잃지 않고-정확히 말하면 되찾고-있었다.

이태운 작가의 ‘선택’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당신은 이제 어떤 삶을 살아내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 같다. <사진 양재영>

재소자들과 ‘즐겁고 맛난’ 식사 후 교도관 3명과 마주 앉았다. 김문형·박소영·신정호씨 등 3명 모두 30, 40대라고 한다. 차세대 소망교도소를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이다.

이들이 관찰하고 느낀 재소자와 소망교도소에 대한 거침 없는 발언록을 한데 묶었다. 한 명은 이곳 온 지 7년 반, 나머지 두 명은 2010년부터 근무한 개청멤버라고 했다.

기자와 간담회를 하고 있는 교도관들. 이들은 “소망교도소에 온 수용자들이 가장 만족하는 것은 수형번호가 아니라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 양재영>

“대학에서 전공한 청소년지도 상담이 많이 도움 된다.” “상담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우울증 검사를 하는데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쉽지 않다.” “나의 경우는 사명감 때문에 일하고 있다. 당연히 보람될 수밖에 없다.” “모바일 접견하는 것 지켜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처음에는 재판과정부터 모두 억울해 하는데, 안정을 찾고 출소 후에 대해서도 준비를 하는 모습 보면 너무 기쁘다.” “안타까운 건 징벌을 먹어 가석방 대상에서 빠지거나 여기 있다 다른 범죄 혐의가 드러나 딴 교도소로 이감 되는 경우다.”

인터뷰 끝날 즈음 공통질문 두 개를 던졌다.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이 이곳 교도행정에 가장 만족해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와 “지금 가장 바라는 게 뭔가?”

답은 미리 짜놓기나 한 듯 일치했다. “우리는 여기서 수인번호 대신 재소자 이름을 부른다. 그게 가장 좋다고 하더라” “소망교도소 수용정원이 현재 400명인데, 그걸 늘려줬으면 좋겠다. 우리 업무량이 늘어나도 괜찮다.”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재소자들. 이들 중 한명은 출소 다음날 기자의 <아시아엔> 사무실을 찾아 2년간 복역중 자신의 변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이제는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양재영> 

기자는 취재 전 애초 요구대로 재소자를 만나기 위해 다시 점심을 먹던 보안동으로 이동해 사회복귀과 상담실에 들어갔다. 두명의 재소자가 앉아 있었다. 40대 중반의 신ㅇㅇ씨와 30대 초반의 이ㅇㅇ씨라고 했다. 점심때 식탁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다.

대학에 근무하다 이곳에 온 신씨는 서울구치소와 춘천교도소를 거쳐 이곳에 왔다고 했다. 전체 3년반 형기를 2주 후면 마치고 만기출소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출소 이툴 후인 9월 10일 <아시아엔> 사무실로 찾아와 기자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신씨는 “이곳에서 매일 1시간씩 영어를, 주당 2시간씩 일본어를 재소자들에게 가르친 것과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분들이 매주 화요일 특강과 함께 우리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무엇보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 고마웠다”고 했다.

‘비전센터’ 현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 수감돼 있는 동안 재소자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게 소망교도소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한다. <사진 양재영>

30대 초반의 이ㅇㅇ씨는 직업군인으로 있다가 성 관련 범죄로 이곳에서 현재 형기의 절반 복역하고 2021년 봄 출소 예정이다. 그는 “사고 치고 이곳에 와서 갇혀 있지만, 지금 밖에 있다면 혼란과 방탕 속에 세상에 휩쓸려 하루하루 악몽처럼 보내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그는 이곳에서 배운 게 너무나 많다고 했다. “독서, 영어, 피아노와 바이올린···. 이런 거는 소망교도소 오기 전 상상도 못한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일상이 돼 있다. 무엇보다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 그리고 조용하고 잠잠해진 나의 모습이다.”

사진 왼쪽부터 황정호 총무계장, 권기훈 소장, 필자. 정태영 총무과장

취재를 마치고 권기훈 소장, 정태영 총무과장, 황정호 총무계장과 함께 교도소 본관 앞에서 양재영 주무가 든 카메라 앵글에 시선을 맞췄다. 2010년 말 개청 이래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앵글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취재 당시 촬영한 사진과 만났던 재소자와 교도관들 얼굴과 화성연쇄살인범 얼굴이 자꾸 오버랩 됐다. 교정시설은 더 이상 인생 막장이 아니라 새 삶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웃으니 당신도 웃네요” 간단명료한 이 문장이 소망교도소 설립목표의 처음이자 끝이다. <사진 양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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