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4일] 타이타닉호 침몰한 날
2010년 중국 칭하이성 7.1 강진 400명 사망
2010년 4월14일 아침 7시50분쯤 중국 서부 칭하이 성의 위수 장족 자치주에 있는 위수현에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해 적어도 400명이 숨졌다. 부상자는 1만여 명에 이르렀다. 지진 발생 후 수십 차례 여진이 계속됐다.
지하 33㎞에서 발생한 이 지진으로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가옥 대부분이 붕괴됐고, 일부 학교도 무너져 초등학생들도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 가옥들이 붕괴돼 인명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현내 전기 공급과 유선전화 등 통신서비스도 중단됐다.
티베트 자치구와 인접한 칭하이성 위수현은 장족들이 모여 사는 집단 거주지로, 주민의 95% 이상이 티베트족인 소수민족 지역이다. 평균 해발 4493m의 고지대로, 2008년 9만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쓰촨대지진 발생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2002년 동티모르 대선투표 종료, 투표율 86%
2002년 4월14일 오후 4시(현지시간)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 선거가 마감됐다. 21세기 최초 독립국가 탄생을 앞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 치러진 선거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유권자 44만명 가운데 86.3%가 투표했다. 282개 투표소 가운데 단지 한 곳에서만 경미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투표장에는 2000여 외국인 및 현지 감시단이 투표상황을 감시했다.
2001년 일본 적군파 해산 공식 선언
2001년 4월14일 일본의 극좌 게릴라 조직 ‘적군’의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살인미수로 기소 중)가 지지자들에 보낸 옥중 성명을 통해 적군파의 해산을 선언했다. 1971년 공산 적군파 간부였던 시게노부 등이 해외 혁명거점 확보를 위해 조직했던 적군파는 이로써 완전히 활동을 중단했다.
중동을 무대로 테러활동을 벌이다 2000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체포된 시게노부는 이날 도쿄의 지지자 집회에서 공개된 성명을 통해 “국제주의와 군사를 특성으로 했던 일본 적군의 해산을 통해 새로운 투쟁방법에 도전하겠다”며 합법적 활동으로 전환할 방침을 밝혔다.
그는 “세계는 변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투쟁은 불충분했고 잘못됐다”고 말했다.
1966년 아프레 이라크 대통령 탑승기 사고로 사망
1966년 4월14일 1960년대와 70년대 북부 이라크에선 쿠르드족과의 전쟁이 계속됐다. 1963년 압 알 살람 아레프(Aref) 대령의 쿠테타로 카쎔 정권이 무너지고 아랍연합을 목표로하는 사회주의 단체인 바트당이 집권했다.
1963년 11월 아레프 대통령은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바트당 통치위원들을 축출했다. 아프레 대통령은 1966년 각료 2명과 함께 헬기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러자 그의 형(兄)인 모함마드 아레프(Mohammad Aref)가 대통령이 됐지만 그 역시 1968년 핫산 소장의 군사쿠테타로 축출됐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1912년 4월14일 영국 사우스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시티를 향해 처녀 항해하던 호화여객선 타이태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뉴펀들랜드에서 남쪽으로 640㎞ 떨어진 지점에서 일어난 이 침몰사고로 1515명이 사망했다.
미국·프랑스 과학자의 감독 아래 무인잠수정 탐사 결과, 충돌의 충격으로 선체 판재 이음새가 벌어져 선체로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조사에 의하면 사고지점에서 32㎞가 채 안 되는 곳에 레이랜드 정기선인 ‘캘리포니안호’가 있었지만 조난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침몰 후 커나드 정기선인 ‘카파시아호’가 사고지점에 도착해 인명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이 사고로 런던에서 최초의 국제해상안전협정이 체결되기도 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 73년 후인 1985년 9월1일 타이태닉호의 잔해가 해저 4000m, 북위 41˚26′, 서경 50˚14’의 위치에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