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아름다운 세상···“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
[아시아엔=편집국] 한국일보 이영창 사회부 기자가 23일자 이 신문에 ‘조국의 아름다운 세상, 그리고 식어버린 개천’을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한국일보는 ‘36.5˚C’란 난을 통해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를 내고 있다. 이영창 기자 칼럼은 이 난에 등장한다. 관련 칼럼 링크와 함께 <아시아엔> 독자들께 소개한다. <편집자>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가족 관련 의혹에는, 각박한 세상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훈훈한 미담과 아름다운 배려가 잇달아 등장한다.
먼저 한국일보 보도로 알려진 ‘장학금 특혜 논란’의 중심에 선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있다. 이 교수는 의전원 학습량이 워낙 많아 조 후보자 딸이 적응하지 못하자, 용기를 주려고 자신이 조성한 개인 장학금을 줬다. 의전원 공부를 아예 포기하려 하자, A 교수는 “포기만 안 하면 장학금을 주겠다”며 조 후보자 딸에게 여섯 차례 총 1,200만원을 줬다.
가족이 해야 할 ‘멘탈 관리’를 교수가 대신 해 준 매우 드문 미담이다. 교수는 “조 후보자 딸이라서가 아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이자면 자퇴 직전에 몰린 학생을 구한 행동은 전적으로 우연히 교수의 선의로 이뤄진 것이 된다.
미담은 또 있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논문 의혹’에는, 자신이 어렵게 일군 연구 결과를 처음 만난 고교생에게 아낌 없이 내 주는 의대 교수가 있었다. 조 후보자 딸은 외고 2학년 재학 중 의대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2주 일했고, 교수와 함께 KCI급 병리학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교수는 “열심히 한 게 기특해서” 제1저자에 올려줬다고 했다.
문과 출신 고교생이 의대 연구소에 인턴을 간 것은 실제 세상에선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대학생 이상만 가는 해외 인턴도 조 후보자의 고교생 딸이 가면 자동문처럼 열렸다.
이렇게 조 후보자 주변엔 우연히도 온정이 넘치는 자발적 조력자가 줄 잇는다. 그가 몇 년 전 SNS에 썼던 ‘개천의 용’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며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일갈했다. 새겨 들을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저 먼 곳에서 개천을 내려다 보며 툭 던진 말에 불과했다. 개천은 예쁘긴커녕 이미 용이 날 수 없을 만큼 말라붙었고, 따듯하긴커녕 차갑게 식어, 개천에선 버티는 일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모두 용이 될 수 없는 이유를 그가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가족에게 쏟아진 호의와 배려를 다 몰랐고 우연한 일이라고만 할 것인가. 개천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대다수 젊은이는 조 후보자 딸처럼 가만히 있어도 기회가 굴러오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 못한다. 그들은 기특하게도 어떤 시련에도 좀체 포기하지 않지만, 대개 기특함을 보상받지 못한다. 잘 사는 집안 낙제생에게 돈을 주며 포기를 막는 교수는 다른 세상엔 없다.
보통의 대학원생은 장학금이 끊길까 전전긍긍하고, 논문에 목숨 거는 연구자들은 1저자에 이름 올리기 위해 수개월 이상 밤새우며 가차 없는 교수의 추궁에 논문을 방어한다.
그 뜨겁던 일본 얘기가 쏙 들어갈 정도로 분노와 절망은 무겁다. 스카이캐슬을 보며 “저런 세상도 있냐”고 탄식했던 개천의 부모들은, 인맥으로 대학 연구실을 거침없이 뚫는 슈퍼맘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름다운 세상은 없다. 조 후보자가 사는 세상의 미담과 호의는, 결국엔 알음알음 서로를 챙겨주고 아쉬울 때를 대비해 서로 사정을 봐 주는 ‘품앗이 관행’에 다름 아니다.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다 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위법이 아니다고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왜 사람들이 장학금과 논문에 특히 분노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가 정의를 말하며 역설했던 수많은 말들이, 스스로의 행동으로 부정당하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인상 깊은 문구가 새삼 떠오른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공정한 과정이 되도록 관리하여, 정의로운 결과를 도모할 임무를 부여받은 자리다. 그러나 이젠 조 후보자가 말하는 정의의 언어는 냉소의 벽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