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2일] 1961년 가가린 최초 우주비행
2009년 ‘가장 아름다운 미라’ 발굴
2009년 4월12일 이집트 고유물최고위원회는 “고고학자들이 최근 채색된 미라 수십 구를 발굴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채색된 아마포에 싸인 미라가 목관 안에 담겨 있는 사진이었다.
고유물최고위원회는 발굴단이 카이로 남쪽 일라훈 피라미드 근처에 있는 고대 이집트 중왕조시대(기원전 2061∼1786년)의 바위무덤 53곳에서 수십 구의 미라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들 중 특히 4구의 미이라가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미라라고 설명했다. 이들 미라에 채색된 고대 이집트의 전통색인 청록색과 적갈색, 금색은 색을 잃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됐다.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강제 입증 문서 발견
2007년 4월12일 정진성 서울대 교수(사회학) 연구팀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이 기록된 네덜란드 정부기록물 보존소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일본 해군 점령기 네덜란드령 동인도 서보르네오에서 발생한 강제 매춘에 관한 보고서>라는 긴 제목이 붙은 보고서였다.
하루 전 교도(共同)통신이 “인도네시아에서 위안소를 운영하던 일본인이 전후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 과정에서 ‘군부 지시에 따라 민간 위안소를 설치했다’고 증언한 내용이 발견됐다”고 보도한 데 이은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당시까지 일본군이 군 위안소의 설립계획ㆍ동원ㆍ경영 등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는 여러 차례 발견됐다. 그러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된 것은 이 기밀문서가 처음이었다.
기밀문서에는 당시 일본 특별해군 헌병대가 거리에서 여성들을 잡아들여 강제로 신체검사를 한 뒤 위안소에 수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군 전용 3개소와 민간용 5∼6개소로 세워져 엄격하게 격리ㆍ통제된 위안소는 위안부 여성 가족에 대한 ‘연좌제’까지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위안소를 탈출할 경우 특수헌병대가 즉시 가족을 체포해 참혹하게 다뤘기 때문에 위안소를 탈출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 여성이 위안소를 탈출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살해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잡아들인 여성들에 대해 강제 성매매를 위해 나체 상태로 신체검사를 벌였다는 인도네시아인 군의관의 증언도 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연구팀은 중국 쿤밍(昆明)시에서 일본군이 중국 여성 23명을 위안소에 보냈다는 미군보고서가 2003년 공개된 이후 동원 과정에 이처럼 강도 높고 구체적인 물리력과 강제성이 동원됐음을 증명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이라크 미군 만행 첫 공개
2007년 4월12일 미국 군 당국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미군에 의한 민간인 사망 사례 약 500건을 공개했다고 뉴욕타임즈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양국 민간인들이 제기한 학살 등 미군의 민간인 관련 부적절한 행위는 수천 건에 이르며 일부가 처음 공개된 것이었다.
미군당국 대변인은 지금까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와 무관한 사망자와 부상자 및 재물 손괴에 대해 보상한 액수는 3200만 달러라고 밝혔다. 이 액수에는 부대장 승인하에 임의로 지급된 위로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2005년 바그다드 수니파 거주지에서는 책가방을 메고 가던 소년이 이를 폭탄을 운반하는 것으로 착각한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같은 해 11월 미군들이 하디사에서 수십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2006년 2월 티크리트강에서 강에서 고기를 잡던 이라크인이 미군들에 의한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했다. 사망자는 미군들에게 적의가 없음을 알리려 자신이 잡은 고기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1961년 가가린, 최초 우주비행 성공
1961년 4월12일 소련에서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발사됐다. 무게 4.75t의 이 우주선은 우주비행사 유리 A. 가가린을 태우고 오전 9시7분에 발사, 최고 고도 301㎞에서 1시간29분(다른 자료에서는 1시간48분)만에 지구를 한 바퀴 선회비행한 뒤 오전 10시55분 소련에 착륙했다.
가가린이 인류최초의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와 “하늘은 무척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웅이 됐다. 중위에서 소령으로 2계급 특진했다. 레닌 훈장을 받은 소련의 영웅으로 부상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자츠크는 가가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이후 보스토크 우주선은 2년 동안 6번 발사됐다. 같은 해 8월에 발사된 보스토크 2호는 25시간 이상 우주에 머물면서 지구둘레를 17바퀴나 돌았다. 나머지 보스토크 우주선은 짝을 지어 발사됐다. 보스토크 3호는 94시간이나 우주에 머물러 새로운 기록을 세웠고, 지구궤도에서 256만㎞ 이상을 비행했다. 보스토크 우주선 가운데 마지막 우주비행을 한 보스토크 6호에는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V. 테레슈코바가 탑승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날아간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할 때가지 우주탐험에서 미국은 소련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1927년 장제스 상하이쿠데타
1927년 4월12일 장제스(蔣介石)가 상하이에서 반공쿠데타를 일으켜 노동자규찰대, 상해총공회(노동조합) 등을 해산시키고 사흘간 시내 각지에서 노동자와 중국공산당원을 체포, 학살했다. 이튿날 6만여 명의 항의 데모대에는 기총사격까지 가해 100여 명이 즉사했다. 당시 상하이는 3월21일 공산당 파업으로 같은 달 24일 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태였다.
장제스의 쿠데타로 300여명의 공산당원과 일반인이 살해됐고 5000여 명이 실종됐으며 500여명이 체포됐다. 국공합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상현 기자 ?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