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민 지원 박원연 변호사 “사기피해 고통받는 탈북민에 깊은 관심을”
[아시아엔=이정철 기자]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탈북민(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서 사기피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탈북민들은 동포, 북한사람, 탈북자, 새터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여기서 탈북자(North Korean Defector)는 단어 그대로 배반자, 탈당자, 망명자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에 새터민은 ‘새로운 터전에 삶을 마련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3월 현재 3만 2705명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한 사람들 새터민. 이들 중에는 운 좋게도 가족 모두 함께 한국에 온 탈북민과 가족 사진조차 가져오지 못한 채 혼자 살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하다. 더욱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모두가 북한을 떠나며 기대했던 한국에서의 생활 즉 ‘장미빛 인생’을 영위하는 것도 아니다. 의사, 공무원, 북한인권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 기반을 다져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사기를 당해 새로운 삶을 위한 원동력을 잃은 채 낙담으로 나날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사기피해로 고통받는 탈북민들에게 무료법률상담을 제공해온 박원연(41) 변호사(법률사무소 로베리)는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겪는 법적문제는 크게 탈북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와 단순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법적 문제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탈북민의 경우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구조와 법치제도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탈북민들이 많이 겪는 법적인 어려움은 주로 △탈북민 브로커비용 △보험관련 문제 △사기사건 피해 △폭행사건 △마약 및 성매매 △형사범죄 등 다양하다.
박원연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찬희) 산하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또 사단법인 통일법정책연구회 회장으로서 탈북민에 대한 개별적인 법률지원뿐만 아니라 위 연구회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탈북민에 대한 법적·제도적 개선을 연구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매거진N>은 7월 10일 서울 서초구 박원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한변협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소개부터 해달라.
“대한변호사협회는 2014년 특별위원회로서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를 구성해 한국 거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법률상담, 소송구조 등의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올 상반기 현재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는 산하에 3개 소위원회 즉 북한이탈주민소송구조소위원회, 탈북청소년대안학교지원소위원회, 북한이탈주민법제도개선소위원회를 두고 탈북민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법무부, 통일부와 함께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변호사단을 공동운영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변호사 100여명이 탈북민 법률지원을 맡고 있다. 5월 27일 전국 25개 하나센터별로 법률지원 변호사 위촉식을 가진 바 있다.”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청년시절부터 통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후 뜻 맞는 학생들과 통일 대비 법률 및 정책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탈북민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겪는 많은 법적 어려움 가령 사기 피해, 보험 관련 문제 등을 보면서 이들에게 법적 도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점이 내가 법률상담과 소송구조에 적극 나서게 된 이유다.”
-탈북민들은 주로 어떤 문제로 찾아오나?
“최근 탈북민들이 많이 겪는 법적 어려움은 탈북민 브로커비용, 보험관련 분쟁, 사기 피해, 폭행, 마약, 성매매 등 다양하다.”
-상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나 탈북민이 있다면.
“지금도 재판 중에 있는 사건인데,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에관한법률’ 위반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 피고인 A씨 경우다. A씨는 2001년경 탈북한 뒤 여러 차례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왔으나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국적자로 취급되어 한국 정부로부터 더 이상 보호받지 못했다. A씨의 아들 내외와 다른 가족들은 A씨 도움으로 탈북하여 한국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A씨는 탈북과정에서 발생한 몇 가지 문제로 인해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탈북자가 아니면서도 탈북자로 신고해 각종 지원금을 수령한 혐의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에관한법률’ 위반죄로 기소됐다. 이에 대한변협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와 (사)통일법정책연구회 등이 10여명의 변호사들로 무료 공익소송을 진행했고, 그 결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지금은 항소심 판결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고 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
-법률지원을 통해 다양한 탈북민들을 만났을 텐데, 그들을 통해 본 국내 거주 탈북민들의 삶을 진단한다면.
“이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내게는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비록 정부관계자는 아니지만 대한변협 위원으로서 한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에게 우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의 삶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여전히 어려운 사회·경제적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커질 수 있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탈북민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된다. 대부분의 탈북민은 북한에서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좀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하지만 한국은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한국정부는 탈북민에게 정착지원금 및 임대아파트 제공, 대학 진학자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학업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으나,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탈북민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지원할 형편이 못 된다. 고소득이 보장된 직업을 얻는 것도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상당수 탈북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자녀들이 교육을 통해 계층 사다리를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거주 탈북민들의 경제적·사회적 삶은 여전히 힘들고 팍팍하기만 한 게 현실이다.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기만 하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탈북민 출신 제1호 변호사가 나왔다는 소식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은 남한 출신 국민들도 선호하는 직업이다. 이를 얻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런 실정에서 탈북민 출신 학생이 변호사시험에 실력으로 당당히 합격한 사실은 매우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탈북민 대학생 중 스스로 노력해 좋은 회사에 취업하거나 학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지금 당장의 삶은 어려워도 탈북민 학생들이 학업에 더욱 신경을 써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뿐 아니라 공무원, 경찰, 회사원,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기회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고 믿는다.”
-통일법정책 연구도 병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취지는 무엇이며 중점을 두는 분야는 무엇인가.
“나는 대한변협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부위원장과 (사)통일법정책연구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내가 창립멤버로 있는 통일법정책연구회는 남북한 통일에 대비해 통일법제를 연구하고 있다. 물론 특정 정치집단이나 종교집단을 대변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법조인·공무원·통일문제 전문가 등 60여명이 통일법제 마련을 목표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통일이라 함은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두 개의 정부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과 더불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사회·경제·문화적 혼란을 방지하고, 사회·경제적 배경이 취약한 일반 서민과 북한주민들이 부작용 없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미리 고민하고,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연구하는 것이 통일법정책연구회의 일차적 목표다.”
-변호사 본업 외에 다양한 일을 해오고 있는 걸로 안다. 야근도 밥먹듯 할 거 같은데···. 정신적·육체적 피로는 어떻게 극복하나.
“변호사가 된 후 처음 3년간은 월화수목금토일 거의 매일 일을 했다. 평균 퇴근시간은 새벽 1시였다. 쉬는 날 없이 매일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로펌 소송업무 처리를 위해 낮에는 재판정에 가거나 검찰청에서 조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또 저녁에는 재판준비를 위한 서면을 작성해야 했다. 주말에는 탈북민 무료법률상담과 통일법제 연구를 병행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고 살았다.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벗어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고 본다.”
-끝으로 법률 문제와 관련해 한국 거주 북한주민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 꼭 조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다. 한국은 법치주의 국가인 동시에 자본주의 국가다. 이와 관련해 감히 말씀을 드린다면, 첫째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타인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지인들 중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한번은 상의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탈북민들이 사기를 많이 당한다. 얼마를 투자하면 투자수익으로 얼마를 더 준다는 식의 거짓말에 속아 피해 입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공짜로 남에게 돈 벌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주는 사람이나 사회는 거의 없다. 더욱이 돈을 누군가에게 주기만 하면 몇배로 되돌려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또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받을 경우, 투자를 권유받을 때는 가능한 남한주민 또는 지인 중 믿을 만한 사람 가령 하나재단 상담사, 신변보호관, 경찰관, 그리고 나와 같은 탈북민 법률지원 변호사 등과 한번 상의를 하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 특히 누군가와 금전거래를 할 때는 더 그렇다. 이런 노력이 사기피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 그는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는 “한국정부의 지원이 탈북민에게 부족할지 모른다”며 “하지만 대다수 한국의 서민들 중에는 탈북민에게 지원하는 정도의 지원 즉 임대주택 및 각종 지원을 못 받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특히 탈북민 대학생들의 경우 등록금 명목으로 국가장학금이 지원돼 학비 마련은 해결될 수 있지만, 졸업 후 취업시장에서는 탈북민이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며 “대학에 진학해 수업을 제대로 소화할 실력이 안된다면 과감하고 현실적으로 적성에 맞는 대학 및 학과를 택하거나 직업학교로 방향을 트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른 시일 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