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8일] 파블로 피카소 영원히 잠들다
2010년 지구촌 유물 되찾기 공조 합의
2010년 4월8일 지구촌에서 전쟁과 제국주의 지배 등으로 문화재를 약탈당한 피해국들이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에 모여 국제회의를 개최, 유물을 환수하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이집트 주최로 처음 열린 이 회의에서 의장을 맡은 자히 하와스 이집트 고유물최고위원회 위원장은 “유물을 빼앗긴 모든 국가들은 문화재가 원 소유국으로 반환돼야 한다는데 뜻을 함게 하고 함께 싸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 7개국이 우선 환수 유물 목록(wish list)을 제출했고, 다른 나라들도 한 달 내에 목록을 내기로 했다. 환수를 원하는 주요 약탈 유물의 목록을 작성, 이들 유물의 환수 운동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기로 했다.
이집트는 베를린 신(新)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사진)과 대영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로제타석, 루브르 박물관의 천장에 전시돼 있는 ‘덴데라 사원의 12궁도’ 등 유물 5개를 선정했다.
그리스는 19세기 초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내 영국으로 가져간 벽화 조각(일명 엘긴 마블)를 우선 환수 유물 목록에 올렸다.
한국은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왕실 의궤를 우선 환수 유물로 등록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중국, 한국, 인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 과거 식민지배를 겪을 때나 전시에 문화 유물을 약탈당한 경험이 있는 20여 개 국가의 문화재 환수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일본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문화재 반환을 요구받고 있는 주요국은 불참했다.
2004년 이라크 무장세력 한국인 억류
2004년 4월8일 한국의 목사 7명이 바그다드 서쪽의 라마디 지역에서 괴한들에게 잡혀 죽을 번하다가 풀려났다.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간의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저항세력들이 외국인을 인질로 잡고 미군과 줄다리기를 벌인 것이었다.
한국인 목사 7명은 같은 달 7일 11시30분께 요르단 암만을 출발해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쪽으로 달렸다. 이들은 이라크 모술 지역 니느웨에서 열리는 선교 신학교 개원행사 참석차 이라크로 오던 중이었다.
약 11시간을 달려 4월8일 오전 10시30분께 바그다드 서쪽 100㎞ 지점의 라마디 부근에 도착한 이들은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팔루자를 통하는 고속도로가 봉쇄된 사실을 확인하고 우회로를 통해 바그다드로 진입키로 했다. 그러나 우회로로 들어서자 무장한 이라크인 수십명이 길을 막고 검문을 했다.
바짝 긴장한 이들은 한국에서 온 의사와 간호사 일행이라고 신분을 밝히자 무장한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스파이인지 조사해야 한다며 총을 겨눈 채 차에서 내리도록 한 뒤 스카프로 이들의 눈을 가렸다. 인근의 창고 같은 곳으로 압송돼 5시간가량 억류됐지만 결박은 당하지 않았다. 무장세력은 스파이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뒤 풀어줬다.
이라크인들은 미군과 수차례 교전을 하면서도 허 목사 일행을 다른 팀에 인계하는 방식으로 보호해 줬으며, 마지막에 검문한 이라크인들은 미군측 검문소 주변까지 배웅해 주고 여권과 자동차를 돌려줬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 사망
1973년 4월8일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스페인 태생의 프랑스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가 남프랑스 자신의 별장에서 생을 마쳤다. 향년 91세.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중에 한 사람이었던 그는 미술사에 있어서 ‘큐비즘’(입체주의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란을 소재로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독자적 스타일로 그려냈다.
1907년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세상에 내놓음과 동시에 브라크와 두터운 교우을 나누면서 그와 함께 입체파운동에 힘써 분석적 입체파, 종합적 입체파를 완성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에 조국 스페인에 있던 피카소는 독일군의 파리 침입직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에 가담하기도 했고 정전 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생애 마지막 20여 년 동안 피카소의 작품은 비평의 대상을 뛰어넘어 신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한국의 6.25전쟁을 테마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 ‘전쟁과 평화’ 등의 대작도 제작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