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청년들 ‘입법회 점거’ 후폭풍…중국 개입 불러올까?

“홍콩이 부끄럽다” 시위대에 합류한 시민이 홍콩 상징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잇따른 투신에 젊은층 자극’···입법회 점거엔 비판 여론도

당국, 대대적인 사법처리 예고···수세 몰린 캐리 람 ‘반격’ 기회 

中정부도 즉각 강경대응에 힘 실어···”中 개입 명분 될라”  우려

[아시아엔=연합뉴스] 홍콩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었던 시위대의 입법회 청사 점거 사태가 2일 새벽 반나절 만에 마무리됐지만, 긴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우려했던 대규모 충돌 사태는 발생하지 않고 대치 상황은 일단 해소됐지만 홍콩 일부 시위대가 전례 없는 과격한 행동에 나서면서 홍콩 정국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홍콩에서는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축인 강경 시위대가 전날 입법회 강제 진입·점거라는 극단적 행동에 나선 것이 최근 잇따른 홍콩 젊은이들의 투신 사건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15일 홍콩 애드미럴티의 유명 쇼핑몰인 퍼시픽 플레이스에서는 30대 남성 량모씨가 송환법에 반대하는 고공 시위를 벌이다가 떨어져 숨졌다.

또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인 1일을 앞두고서는 홍콩교육대 1학년생인 뤄모씨가 “송환법 완전 철회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끝까지 싸우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투신해 숨졌다.

실제로 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석한 많은 시민은 고인들을 추모하며 ‘살인 정권’이라는 손팻말을 대거 들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달부터 본격화한 송환법 반대 운동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홍콩 시민들의 지지를 얻은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으로부터 송환법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끌어내자 이런 결과에 고무된 강경파들이 더욱 과감하게 자신들의 요구 표출에 나선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물리력을 동원한 사상 초유의 입법회 강제 점거 시위는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반송중(反送中·송환법 반대)’ 진영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화할 가능성마저 감지되고 있다.

‘Optimist’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지난달 9일과 16일 진행된 수백만 명의 평화적 시위는 행동하는 민주주의였지만, 어제 입법회에 대한 부끄러운 공격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범죄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누리꾼 ‘Foglamp’은 “시스템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부정하면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종종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라면서 입법회 점거 시위를 옹호했다.

과격 시위 논란은 시민들의 대규모 저항에 밀려 송환법 추진을 사실상 중단하는 등 큰 정치적 위기를 맞았던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는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람 장관은 이날 새벽 4시(현지시간)에 경찰 수장을 대동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입법회 건물에 몰려가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우리는 엄중하게 비난해야 한다”며 “홍콩에서 법에 의한 통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람 장관은 그러면서도 “2020년 6월이 되면 현 입법회 임기가 끝나므로 송환법은 기한이 다 되거나 죽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들었던 문제에 관한 매우 긍정적인 대답”이라며 송환법 완전 철폐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유화성 메시지도 던졌다.

홍콩 정부는 입법회를 점거한 강경 시위대를 색출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향후 경찰이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나설 것으로 보여 다수 시위대가 체포·사법처리되는 후폭풍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이번의 폭력 시위는 그간 홍콩 사태를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중국의 강한 개입 욕구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입법회 점거 같은 ‘혼란’ 상황이 추가로 발생한다면 중국에 특별행정구인 홍콩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상기시키면서 “홍콩의 위기가 심화한다면 무엇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중국의 지도자들이 30년 전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폭력에 의존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이날 오전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홍콩 강경 시위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연락판공실은 이날 ‘책임자’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폭력 사건에 경악하고 분노한다. 이를 규탄하는 한편 홍콩 특별행정구가 심각한 위법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면서 사실상 홍콩 특구 정부의 강경 대처를 주문했다.

홍콩 언론들이 공개한 현장 사진과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전날 입법회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진입해 폐쇄회로(CC)TV, 역대 의장 초상, 의사당의 홍콩 상징물 같은 다수 시설과 집기를 훼손했다. 또 시위대는 입법회 건물 곳곳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정치 구호와 함께 각종 낙서를 남기기도 했다.

홍콩 내 일각에서는 홍콩 경찰이 입법회 건물을 일부러 내줘 강경 시위대가 여론의 비난을 받고 고립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전날 홍콩 경찰은 수시간 동안 시위대를 입법회 안팎에서 막다가 밤 9시 이후부터는 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밖으로 철수했다가 이날 새벽에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입법회 탈환에 나섰다.

하지만 홍콩 경찰은 이 같은 ‘음모론’을 일축했다. 스테판 로 경무처장은 경찰이 전날 입법회 건물에서 8시간 가까이 시위대의 진입을 막아내고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전략적 차원에서 후퇴와 재정비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전례 없는 강경 시위 양상 돌출에 그간 대규모 평화 시위를 주도해온 홍콩 야권과 시민단체 진영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야당 의원들은 전날 입법회를 찾아가 처음에는 시위대의 진입을 막다가 나중에는 자진 철수를 호소했다.

주최 측 추산을 기준으로 지난달 9일과 16일 송환법 반대 집회에는 각각 100만명,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전날 시위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55만명이 참석해 예전 집회보다 참석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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