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 ‘독자 인터넷망’ 법안 서명···”검열 강화 시도” 비판도
“국제인터넷망과의 단절 대비한 기술·행정적 조치 규정”···CNN “실현은 미지수”
[아시아엔=이정철, 연합뉴스] 러시아가 법률상으로는 독자적인 인터넷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국제인터넷망과 단절된 별도의 자체 인터넷망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고 미국 CNN과 러시아 타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친정부 성향 상·하원의원들이 주도해 지난해 12월 제출한 이 법안은 지난달 중하순 각각 하원 심의와 상원 승인을 거쳐 대통령 서명 절차로 넘겨졌었다.
발의자들은 당시 “해당 법률은 미국이 지난해 9월 채택한 새로운 ‘국가사이버전략'(National Cyber Strategy)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새 국가사이버전략은 북한·중국·러시아 등을 사이버공격 위험국가로 지정하고, 미국과 동맹국들이 사이버공격을 받을 경우 대응공격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 의원들은 법률 제정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미-러 간 충돌로 러시아 인터넷이 글로벌인터넷망과 단절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률은 6개월 뒤인 11월 1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이 법률은 러시아 인터넷이 국제인터넷망과 차단된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기술·행정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안은 러시아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터넷 트래픽이 감독기관인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매스컴 감독청'(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 통제 하의 ‘라우팅 포인트'(데이터 유출입을 통제하는 장치)를 거치도록 하는 방식의 강력한 인터넷 검열·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로스콤나드조르는 비상시 러시아 내 통신서비스 이용을 보장하도록 하는 책임을 맡고 있으며, 이런 비상 시 외부의 트래픽을 차단하고 순전히 러시아 자체 웹을 작동하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법률은 또 러시아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국제인터넷망 접속이 끊길 경우 가동할 수 있는 자체 DNS(네트워크에서 도메인이나 호스트 이름을 숫자로 된 주소로 해석해주는 네트워크 서비스)를 구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웹 트래픽의 출처를 규명하고 금지된 콘텐츠를 차단할 수 있는 DPI(deep packet inspection) 기술 이용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할 것도 의무화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인터넷이 국제 서버와 차단된 상태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도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중국식 방화벽 구축으로 인터넷 감시나 검열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새 법률이 인터넷에 대한 전면적 검열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 속도 저하나 상품 및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경없는기자회’와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등의 국제기구들은 “러시아의 새 법률이 유럽인권조약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에 푸틴이 서명한 법안에는 실질적인 세부 사항이 거의 명시되지 않아 현재로는 러시아 독자 인터넷망은 이론에 불과하다고 CNN은 분석했다.
한편 러시아의 인터넷은 최근 몇년 동안 내부적으로 검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더욱 기울어지는 추세다. 러시아 의회는 지난 3월 인터넷 자유를 축소하는 내용의 법안들을 승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