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저지는 ‘금기’를 깬 행동이었나?

금줄을 보면 한편으론 숙연해지고 한편으론 새생명을 맞이한 이에 대해 축하의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금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보인다. 금기에는 행동이나 표시로써 하는 것과 말로써 하는 것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신성한 제의(祭儀) 공간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 사람의 출입을 막는 것이나, 해산 후 같은 표시를 하는 것, 역귀나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대문 위에 가시나무나 엄나무를 달아놓는 것 등은 행동하는 금기에 속한다. 한편 “밥 먹고 금방 누우면 소가 된다”, “해가 진 뒤에 전곡(錢穀)을 내보내면 복이 나가 가난해진다”는 등의 속신은 말로 하는 금기에 속한다.

또 현대에서도 넉 ‘사(四)’가 죽을 ‘사(死)’와 음(音)이 같다고 하여 건물에 4층 표시를 하지 않는 속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기피하는 말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금기는 어디서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문화현상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나오는 금기에 관한 얘기가 있다. 세종대의 신숙주(申叔舟)는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던 배 안에서 폭풍을 만난다. 배에는 일본의 포로가 되었다가 함께 귀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 임신한 여자가 있었다.

뱃사람들은 일제히 “임신한 여자는 물길에서 꺼립니다. 물에 던져 재앙을 면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신숙주는 “사람을 죽여 삶을 구하는 것은 나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라고 하며, 몸으로 임산부를 가로막으며 뱃사람을 설득했다. 얼마 뒤 태풍이 잠잠해져 배가 순항했다.

이렇게 금기에는 공동체 구성원의 아픔과 기억을 공유하는 기능도 있다. 그래서 공동체엔 ‘해서는 안 될 짓’이 있다. 며칠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회의 ‘패스트트랙’ 법안이 마침내 4월 30일 새벽 각 위원회에서 통과가 되었다.

패스트트랙은 신속처리 법안을 말한다. 국회에서 중요성과 긴급성이 있는 특별한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한 법적 절차다. 사안이 긴급하고 중요한데도 국회에서 통과가 지연될 경우,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법에서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의 처리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의 독자적인 법안 처리가 쉽게 가능할 수 있으므로 법안 통과의 요건이 일반적인 의결보다 높게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 초유의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몸싸움, 고성(高聲)은 물론 망치와 쇠 지렛대까지 등장했다. 국회에서 이같은 폭력사태가 발생한 건 2011년 한미 FTA를 두고 의원 간 충돌이 벌어진 이후 8년만이라고 한다.

이것은 동물국회를 막자고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그야말로 금기를 깨뜨린 것이다. 그럼 이 금기를 깨트릴 정도의 패스트트랙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법안은 세 가지다.

첫째, 선거제 개편안. 의석 300석을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늘리고, 배분 방식은 50% 권역별 연동형으로 하자는 내용이다.

둘째,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찰이 독점해 온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 일부, 공소유지권을 독립기관인 공수처에 주자는 내용이다.

셋째, 검·경수사권 조정안. 경찰에 1차 수사권·수사종결권을 주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폐지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3개 사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것에 합의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며, 지난 24일 문희상 국회의장실에 항의 방문했고, 25일부터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회의가 열릴 수 있는 세 곳을 점거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자유한국당은 왜 이 패스트트랙을 금기를 깨뜨리면서 까지 반대하는 것일까? 자유한국당은 무엇보다 선거제 개편안이 자유한국당에 불리하다고 보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결국 좌파 장기집권 플랜이 시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이 투표한 대로 의석을 배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소수당에 유리한 것이다. 그래서 국회가 거대 양당체제보다 다당제로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자유한국당의 의석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발과 여야 4당의 엇갈린 이해에 따라 향후 논의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다. 이번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최대 330일 이후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그러나 어쨌든 통과야 하겠지만 선거제 문제에 있어선 향후 불리하단 계산이 서는 당이나 정파의 반대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금기에는 벌이 따르게 마련이다. 금기를 깨뜨린 정당이나 단체는 반드시 국민의 지지를 잃어 엄청난 과보(果報)를 받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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