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전 총리 특별강연 “한일관계 향후 100년 이렇게 설계를”
[아시아엔=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 ‘3.1독립운동’으로부터 100주년을 맞은 오늘날, 한일관계의 향후 새로운 100년을 논하는 것은 대단히 의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와 같은 논의의 장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 몇년 남북관계가 어떻게 나아갈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00년 앞을 내다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연장선상이 아닌, 한일관계의 비전에 기대를 담아 생각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일관계의 향후 100년을 이야기하려면 역시 우선은 과거 100년을 매듭짓는 것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식전에서 “역사를 다시 세우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과제이며, 친일잔재의 청산이 과제다”라고 발언하는 한편, “이웃나라의 외교에서 갈등요인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친일청산도 외교도 미래지향적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한다”고 발언하여 “힘을 합하여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했을 때, 비로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벗이 된다”고도 호소했습니다. 피해자들이란 최근 이슈가 된 조선인 징용공과 일본군 ‘위안부’ 분들을 상정한 발언이었을 테지만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요. 한일 간의 외교마찰이 심화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는 마음을 문 대통령의 연설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훌륭한 연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설에 대해 일본정부측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향후 한일관계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100년 전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개항을 한 일본은 구미열강에 질 수 없다며, 뒤늦게나마 해외로 나가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 함께 한반도를 식민지화 했습니다. 일련의 행동은 ‘대일본주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사상에 자극받아 식산흥업,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크고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참가한 것입니다. 결과는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하여 역사적인 참패를 맛보게 됩니다. 문제는 일본이 ‘대일본주의’에 의해 일련의 행동을 일으킨 사실에 대한 일본 스스로의 정리정돈이 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도쿄재판의 결과를 수용했습니다만, 이는 연합국측이 시행한 재판입니다. 그러므로 식민지화와 전쟁에 의해 고통과 비극을 경험한 분들에 대한 진심을 담은 사죄는 이루어진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일본주의’를 수행한 건 일본정부였습니다만 그 당시 최고책임자는 ‘천황’입니다. 이런 의미로는 지난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은 최고책임자가 사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 것이며, 한국측으로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었을 겁니다. 단,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천황’을 숭상하며 현 헌법체제 하의 ‘천황’은 국정에 관해 권한이 없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일본국민이 “문희상 국회의장은 왜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하며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천황’은 사죄한 적이 없는 것일까요. 현재 아키히토 ‘천황’은 이번 5월에 퇴위할 예정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은 1990년 5월,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당시, 궁중 만찬회를 열어 “한반도와 일본의 오래 되고 풍요로운 교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쇼와 ‘천황’이 ‘금세기의 어느 시기에 한일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음은 대단히 유감이며, 두번 다시 되풀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사실이 떠오릅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한국의 여러분들이 경험한 고통을 생각하여 저는 통한의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라며, 사죄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 후 이듬해 탄생일 때에는 ‘천황’이 직접 “간무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부터 한국과의 유대감을 느끼는 바입니다”라며, 본래의 상식으로는 금기시 되어온 발언을 한 적 있습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자신의 출생 계보에 관한 사정까지 언급하는 것은 ‘천황’이 한일관계에 대해 대단히 염려하여 풍요로운 교류가 일어나던 과거의 한일관계로 돌이키고자 하는 의사가 드러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또한, 19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을 초대하여 궁중만찬을 열었을 때 ‘천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일본에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입니다.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있던 일입니다. 또한 한반도의 선조들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저희 일본에 전수되어 저희 선조들은 한반도의 선조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양국의 길고 밀접한 교류역사의 일부에는 일본이 한반도에 계신 분들에게 다대한 고통을 초래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번, 이 점에 대해 제 비통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만, 지금도 변치 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전후, 일본 국민은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 서서 한국의 여러분들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천황’이 가장 이른 시기에, 가장 진지하게, 가장 명확하게 한국의 여러분들에게 사죄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 여러분들에 대한 ‘천황’의 마음을 일본정부, 그리고 일본국민들이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한국의 여러분들이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총리 재직 중,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천황’의 방한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이 취지를 ‘천황’께 전한 바 있습니다. 아쉽게도 ‘천황’의 방한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2019년 5월에 즉위할 새로운 ‘천황’이 한국 여러분들의 환영 속에서 방한하는 기회가 생길 것을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는 간단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만약 이런 기회가 생겨 새로운 ‘천황’이 아키히토 ‘천황’과 같은 마음으로 한국 여러분들과 마주했을 때 한일관계는 크게 한 발 나아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매듭을 짓는다는 의미에서 ‘천황’보다도 국민의 의사로서 일본정부가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1995년, 전후 50주년의 기념식 자리에서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되었습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우선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해 나가야만 한다”고 발언하여 평화의 고귀함과 감사함을 잊기 쉬운 상황에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또한, “우리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에 국책을 오판하여 전쟁의 길을 선택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고, 식민지 지배라는 침략을 통해 많은 나라들, 이 중에서도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인민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초래했습니다. 나는 미래에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 이곳에서 재차 통절한 반성의 마음을 표현함과 동시에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또한 이 역사가 초래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아시아의 인민들을 고통에 빠뜨린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또한 깊은 반성을 전제로 독선적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평화이념과 민주주의를 추구해 나가야 한다면서 말을 맺었습니다. ‘천황’의 마음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일본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즈음 일본은 이미 그 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불황에 접어듭니다. 일본은 패전 후, 반성하는 태도로 평화헌법을 제정하여 국권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원히 방기했습니다. 또한 육해공군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헌법 9조에서 맹세했습니다. 이 결과로 일본은 경제 중심의 발전을 이룩해 기적적으로 전후의 복구부흥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잇는 제2 경제대국의 자리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경제가 버블을 일으켰고 적절한 대응에 실패하여 그 후 장기적 경제불황 시대가 이어집니다. 일본국민은 자신감을 상실했습니다. 그 사이 중국 등을 필두로 주변국은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일구어 왔기 때문에 일본국민은 중국과 한국의 여러분들에 대해 관용적 마음을 갈수록 상실해 가고 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배경이 일본인의 일부에 혐한, 혐중 감정을 증폭시킨 것입니다. 독선적이고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확산될 빌미가 생긴 것이지요.
일본국민의 불만은 한 때 산업계-정치계-관료계의 유착체질로 물든 자민당 정권을 향해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여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하였고, 이 하토야마 정권은 일본의 외교 중심을 대미 의존형에서 미일안보를 기본으로 삼으면서도 보다 아시아 지역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자, 한일, 중일관계는 동시에 개선되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자민당의 아베 정권으로 체제가 돌아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하는 의향을 표명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발언한 사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으로 한일관계는 정상회담이 오랫동안 보류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 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한일 정부 간의 합의에 도달하는 등 일시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빠져나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최근엔 징용공 문제와 해군의 레이더 조사 문제가 발생하여 한일관계는 대단히 비정상적 상태에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2015년에 미국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한일 외무장관급 회담 결과,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이 합의를 읽은 순간, 이것으로 최종적 결착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합의에 의해 총리의 사죄와 일본정부의 10억엔 출자가 결정되었지만, 이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못 박은 점은 일본이 고압적인 태도로 두번 다시 사죄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 한국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염려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때 저는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다음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 한국으로부터 지난 전쟁 당시의 ‘위안부’ 제도에 대해 엄중히 비판받으며 사죄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서 법적으로는 해결되었다거나, 한국에는 충분히 경제적 보상을 수행했으니 언제까지나 같은 문제를 가지고 들먹이지 말라는 식으로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전쟁의 피해에 대해 패전국이 짊어지는 것은 사실상 ‘무한책임’입니다. 정해진 배상금을 지불하였으니 책임은 이걸로 수행했다는 것을 패전국측은 말할 수 없습니다. 승전국이나 구식민지로부터 ‘이만 했으면 더 이상 책임은 묻지 않을게’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책임은 계속 짊어지고 가야만 합니다” 저는 이 생각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마음을 일본의 위정자들이 가질 때 비로소 ‘위안부’ 문제는 해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징용공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의 대법원이 배상을 명한 판결이 나왔습니다만, 이에 대해 고노 외무상 등이 비난하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당초 1991년 당시 야나이 조약국장이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고 답변한 바 있으며, 이는 즉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한일 양 정부가 징용공 피해자 분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냉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레이더 조사문제는 작년 말 바다 위에서 한국 해군의 구축함이 일본 해상자위대의 P1 초계기에 대해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사한 사실에 대해 일본정부와 많은 일본국민이 대단히 위험한 행위라며 항의한 부분에서 시작된 논쟁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한국의 함정은 조난된 북한의 어선을 한창 구조하던 중이었으며, 한국군에게 자위대기를 공격할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모가미 전 항공막료장에 따르면 최근 화기관제 레이더는 상시 모든 주위에 전파를 발출하고 있으므로 주변에 있는 항공기 등에는 전파 조사가 일어나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위험하다고 소란을 피울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냉정한 태도로 과한 부분이 있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끝낼 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냉정함을 상실케 하여 호전적인 분위기로 단번에 기울어지는 일본의 여론에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지금만큼 한일관계에 있어서 미래를 바라보며 냉정함이 요구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역사적으로 이웃으로서 서로가 다양한 은혜와 영향을 주고받았고 앞으로도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웃끼리 서로 증오하면 서로 나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반대로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면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입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더욱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저희 조부 이치로는 1954년에 총리직에 취임해 1956년에 일소수교를 달성하신 후 사퇴하셨습니다. 조부는 전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총리가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조각 직전에 추방처분 되었습니다. 추방되어 유유자적하며 하루하루 보내는 중에 코우덴호페칼레르기 백작의 저서 <전체주의국가 대 인간>이란 책을 읽고 크게 감동받아 그의 ‘우애’ 이념에 공명하여 그 저서를 <자유와 인생>이란 이름의 책으로 번역하셨습니다. 그 후 정계에 복귀한 조부 이치로는 우애를 ‘상호존중’, ‘상호이해’, ‘상호부조’라고 설파하며 우애사회의 실현에 힘을 쏟았습니다.
모친이 일본인인 오스트리아인 코우덴호페칼레르기 백작은 자유와 평등의 징검다리로서 ‘우애’의 소중함을 역설했습니다. 20세기 초두, 히틀러와 스탈린 2개의 전체주의에 지배되던 유럽에서 전체주의와 싸우는 사상으로서 ‘우애’를 제창한 것입니다. 그는 우애이념에 근거해 범유럽주의를 제창하였고 그것은 2차세계대전 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서로 증오하던 독일과 프랑스는 석탄과 철강 공동관리를 비롯한 협력을 거듭했습니다. 나아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주변국가들에 대해서도 경제를 중심으로 한 협력관계가 심화하여, 우여곡절 끝에 이 노력이 오늘날의 EU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가 재차 전쟁을 할 거란 건 아무도 상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럽이 사실상 ‘부전공동체’(不戰共同體)가 된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애는 결코 과거의 이념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정치의 장에서야말로 가장 중요한 이념이란 것입니다. 우애란 자기존엄의 존중과 함께 타인의 존엄도 동등히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타인의 자유에 대해 존중하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개성을 살리며 돕는 일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우애는 ‘자립’과 ‘공생’으로 인수분해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립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이 존중받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 타인과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고 함께 기뻐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겁니다. 이는 의존과 서로 기대기가 아닌, 공생입니다. 공생 없는 자립도 자립 없는 공생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애는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성립하는 이념입니다. 근대국가는 한 나라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타국과의 다양한 협력과 영향 속에서 존재합니다. 국가로서 어떻게 자립을 도모하면서 타국과 공생하는지, 국가운영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로 말씀드리면 저는 현재 일본은 미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으며 보다 중심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이동하는 것이 우애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애이념을 더욱 넓게 이해한다면 인간과 자연 간에도 성립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립하며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지는 인류에게 가장 큰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글로벌리즘이 기능하지 않고 내셔널리즘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저희들은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저는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애이념에 근거한 지역적 기관을 창설하여 구성하는 나라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장을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역적 이념에 근거해 공동체를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공동체 안에는 결코 무력을 사용하는 일 없이 다양한 분쟁은 철저히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무력행사는 결코 분쟁의 본질적 해결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우애이념에 근거하여 동아시아가 부전공동체가 되는 것을 꿈꾸며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ASEAN 10개국은 경제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는 운명공동체이자 2020년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하고자 한다”고도 발언한 바 있습니다. ASEAN 10개국에 한중일 3개국이 더해지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이 형성됩니다. 중국은 그 의사를 이미 표명하고 있으니 나머지는 일본과 한국의 태도입니다. 저는 일본이야말로 그 선두에 서서 첨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다름 아닌 일본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사람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초래한 이후 74년이 경과한 지금도 아직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졌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후 70년이 되는 해, 일본이 역사를 마주하며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의해 고통받은 사람들과 나라에 대해 확실히 사죄와 보상을 수행했더라면 동아시아가 공동체를 향해 크게 한 발을 내딛었을 것입니다.
저는 총리재임 중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는 일의 중요성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리고 한중일 3국협력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재개되어 한중일의 협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될 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현재 한반도가 평화를 위해 크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수 차례 열려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도 하노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회담은 결렬되어 그것이 실패였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논조가 눈에 띱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중단하고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하여 북미 간의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것이 한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닌 겁니다.
양자가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낼지, 오히려 이번 회담에서 그 모습이 희미하면서도 비쳐진 것으로, 좋았다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을 향후에도 지속하는 것으로 그 동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이 없고, 미국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일은 없어야겠지요. 북미관계가 질적으로 개선되어 한반도는 위기적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이야말로 일본과 중국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움직임을 지지하는 자세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은 한반도의 남북분단에 커다란 책임을 갖는 나라입니다.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100년 후를 생각하면 한반도는 어떤 형태가 되어 있든, 하나의 나라가 되어 있을테니까요.
수년 전까지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중에 어떻게 북한을 포함시킬지는 결코 쉬운 논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관계가 급진전하여 북한을 그 공동체에 넣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동아시아 공동체 의회를 설치해 거기서 경제, 무역뿐만 아니라 환경, 에너지, 교육, 문화 그리고 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논의를 시행하는 장이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키나와와 제주도가 그런 회의가 개최되는 지역으로 참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의 2대 대국 중 하나가 된 중국이 경제적·정치적으로 동아시아 국가와 평화적으로 발전해 가도록 하고 북한도 경제적·정치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국가로 발전해 가도록, 그 리드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성숙한 국가가 되어 있는 일본과 한국의 커다란 존재의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상에 공감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함께 일어나 동아시아를 평화롭게 매력있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전진시켜 실현하기 위해, 일본·한국·중국이 중심이 되어 국가를 넘은 국제적인 파티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이를 제안하며 저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