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별세 이필우 전 국회의원 “단란한 가정은 빛나는 기쁨···어눌해도 진실하면 신뢰 얻어”

팔순 기념 케익의 촛불을 끄고 있는 이필우 회장(오른쪽 세번째)

[아시아엔=이상기·주영훈 기자] 이필우 전 국회의원(충북도민회 중앙회 회장,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회장, 동일그룹 회장)이 2일 89세로 별세했다.

이필우 회장은 평생 업적만큼이나 자상한 인생 지혜를 주변에 남기고 떠났다. 고인은 평소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남몰래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누구보다 4남매의 가족을 사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특히 조상에 대한 숭모정신이 투철해 2010년 4월 경주이씨 중앙화수회장을 맡아 큰 금액을 아낌없이 기부했다. 그는 평소 삼덕(德), 즉 지덕·단덕·은덕(智德, 斷德, 恩德)을 실천해왔다.

이필우 회장의 성공 비결을 쓴 <인생의 성공 99가지 지혜> 엮은이 이재준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필우 전 의원은 수십년간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신문에 알리지 않고 몰래 해온 것이다. 이를 신문에 보도하자고 하면 극구 말린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이재준 칼럼니스트는 “이 전 의원은 매일 건강하게 봉사하며 많은 이에게 기쁨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 생활 속에 유유자적하는 군자의 풍모가 보인다. 이 의원이 살아온 경험을 보면 나 역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필우 회장은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7세에 <주역>을 읽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그는 “한학은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배우는 것입니까?” 하고 부친에게 질문하곤 했다. 부친은 이에 “다 필요할 것이니 열심히 하거라”고 답했고, 필우 소년은 더이상 묻지 않고 한학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고인은 평상시 대화 때 어릴 적 익힌 한문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대부분 <논어>나 <주역>, <손자병법>에 나온 명구들이었다. 그는 특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좋아해 강조하곤 했다.

충북 영동 출신의 이 회장은 젊은 시절 서울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했다. “정보력이 우수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철학에 따라 고인은 다른 택시회사들에 앞서 차량용 일제 LPG 가스통 한국 특판권을 얻어 부를 축적했다. 1970년대 초 전국 택시들이 이를 다 장착했느니 그 수입은 어마어마했다.

이른바 ‘강남 제일의 땅부자’ ‘부동산 투자의 귀재’라 불렸던 이 회장은 말 많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 보고도 간명한 것을 선호해  설명이 길면 도중에 제지하곤 했다.

‘춘치자명'(春雉自鳴, 봄 꿩이 스스로 울음소리를 내어 자기 위치를 알림으로써 사냥꾼에게 잡혀 죽고 만다)은 이 회장이 평소 좋아하던 고사성어다.

고인은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를 예를 들어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인은 또한 ‘다변’과 ‘능숙한 말’을 경계했다. 고인은 “너무 말을 잘해도 안 된다. 말은 비록 어눌해도 그 속에 진실이 담긴 것이 더 낫다”며 “말은 어눌하게 해도 진실한 자세를 가지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성공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고 늘 말했다. 고인은 “성공하려면 자기 주변을 키워줘야 한다”는 성공철학으로 수많은 지인을 지원해 재력가로 성장시켰다. 고인은 또한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자기발전이며, 성공의 지름길”이라며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길”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간디의 “이타적인 삶이 가장 보람있는 삶”이라는 말을 종종 되뇌며 이웃에 대한 나눔을 실천해 옮겼다.

6.25 전쟁 당시 유행하던 말이 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이 회장은 “이 말보다 더 좋은 뜻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말을 응용해 “어떤 조직이라도 화합하고 뭉치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는 지론을 한결 같이 내세웠다.

논어에 나오는 ‘불치하문'(不恥下問,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이란 말이 있다. 고인은 세살 어린아이한테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낮은 자세로 묻는 걸 주저하지 말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함께 나가는 걸 늘 강조하곤 했다.

이 회장의 가족 사랑도 남달랐다. 고인의 ‘가정관’이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다.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곳이다.”

고인은 스위스의 교육철학가 페스탈로치와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을 특히 좋아했다. “가정의 단란함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도화수 여사와 이상수(신한은행 강동본부장)·이상민(동일스포츠클럽 대표이사)·이경희·이진희씨 4남매가 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 영결식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충북 영동 선산.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