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완치단계 18살 석호 아빠의 ‘꿈’과 ‘호소’

자폐증 환자를 다룬 영화 <레인맨>의 한 장면

“줄기세포 라정찬 박사께 간곡히 당부합니다”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과 ‘말아톤’의 ‘초원이’

[아시아엔=주영훈 기자] 더스틴 호프만이 자폐증에 걸린 형으로 나오고 톰 크루즈가 형에게 남겨진 유산을 뺏으려는 야박한 동생으로 나온 <레인맨>. 두 사람은 여행 중 우연히 도박장에 들어갔다가 블랙잭이라는 카드게임을 하는데, 이 게임은 지금까지 나온 카드의 패를 외우면 다음에 나올 것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동생은 형이 카드의 패를 모두 외우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애인으로만 알았던 형에게 이러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안 동생은 카드 게임의 룰을 가르쳐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한다. 그런데 형은 정말 천재인 것일까?

자폐증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천재적으로 피아노를 잘 치거나, 어떤 사물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똑같이 그려 내거나, 숫자에 대해서는 비상할 정도로 계산하고, 아주 오래전에 벌어진 사건들까지도 세세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나온다. 이들을 바보 석학(idiot savant)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사람들은 자폐증 환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극히 일부일 뿐이다.

자폐증은 상당히 중증의 질환이다. 뇌파나 CT, MRI에서 이상 소견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부검해 보면 소뇌의 퍼킨제 세포(Purkinje cell) 수가 적다. 형제 중에 자폐증이 있는 경우 일반인의 50배 정도로 나타날 확률이 높아지는 등 유전적 성향도 강하다. 자폐증 환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정신 지체를 동반한다. 언어능력도 떨어지고 일상생활도 어려움이 있다. 3할 가량은 IQ가 70이 넘고 학습이 가능하다.

자폐증 아이의 눈을 억지로 맞추면 공허하고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 지체가 중증인 경우라면 언어 발달도 느리고 행동도 같은 나이의 아이에 비해 발달 수준이 낮다.

대부분 자폐증 아이의 부모들은 슬프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물의 왕국>은 봐야 하고, 상황이 어찌 되었건 자기가 맡은 일을 다 하고 나면 초코파이를 먹어야 한다. 그러니 비장애인인 동생은 복장이 터지고 화가 나서 형이 밉고 짜증날 뿐이다.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레인맨>과 <말아톤> 두 영화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진하게 전해준다. 그런데, 만일 당신의 가족이 그 주인공이라도 감동할 수 있을까? 때론 하늘이 무너지듯 가슴이 멍해올 것이다. 자폐환자 가족들 심정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그동안 불치병으로만 알려져온 자폐증 치료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있다. <아시아엔>은 최근 자폐아이를 둔 아빠가 보내온 수기를 요약해 싣는다.

나의 사랑스런 큰 아들, 이석호

결혼 7년차에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어렵게 갖게 된 귀한 아들이다. 석호 5살 유치원 다닐 적 선생님이 “석호가 아무래도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다고 의사와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그때까지는 20개월차 동생도 있기 때문에, 석호에게 관심이 적어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더디게 언어구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MRI 등 정밀검사를 통해 원인은 모르지만 전두엽에 이상이 있다는 발달장애(ADHD) 증상 즉 자폐증이라고 했다. 진단 이후 초등학교 내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비슷한 증상 아이들과 놀이치료 및 체육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또래 애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장애인반에서 공익요원이 1대1로 돌봐야 했다.

분노조절이 안 되어 친구들과 싸우고, 공익선생님을 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약을 더 많이 투여하면 석호는 기력이 없어 축 처지고 눈빛은 생기를 잃고 잠만 자는 거였다.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아들 약을 내가 직접 먹어보니 하루 종일 맥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현대의학으로는 해결책이 없음을 알았다. 석호의 병명은 전반적 발달장애, 활동 및 주의력 장애(ADHD), 행동장애다. 학습은 안 되지만, 석호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덩치는 커 성인모습이지만 정신적으로는 4살 정도의 유치원 수준이다. 석호가 했던 말은 엄마, 아빠, 김밥, 비빔밥, 냉면, 피자, 된장찌개, 짜장면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 사줘, 빨간 안경 사줘, 동생 이름 정도였다.

또 계속해 손뼉 치는 듯한 행동과 함께 자기세계 속에 빠져 혼자 중얼거리며. 간헐적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계속 서성이며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18년간을 우리 부부 중 한 사람은 번갈아 가며 석호를 지켜야 했다. 외식도 여행도 불가능했다.

석호가 고1 때인 2017년 지인인 장 박사님으로부터 줄기세포의 효능에 대하여 소개받았다. 우리 부부는 줄기세포를 맞히기로 했다. 2017년 8월부터 1년여 해외를 다녀왔다. 줄기세포를 맞기 위해 혈액채취, 지방채취 단계부터 석호는 쉽지 않았다. 정상인은 간단하게 채취할 수 있으나 석호는 주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러 번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양산까지 KTX를 타고 내려가서 전신마취 후 지방을 채취할 수 있었다.

석호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서 2017년 8월, 첫 줄기세포를 맞았다. 나는 기대반 우려반으로 안 맞으려 발버둥치는 석호 팔을 꽉 붙잡으며 장 박사님과 어르고 달래 줄기세포를 맞혔다.

귀국 1주일 후 석호를 정밀 관찰해봤다. 미세하지만 분명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우리 부부는 다음 달, 그 다음 달 계속하여 줄기세포를 맞혔다. 두번 맞을 때까지도 석호가 돌발적인 상황을 만들까 하여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세번째 맞힌 날 저녁,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데 석호가 통제가 되어 나는 휴대폰으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줄기세포를 맞기 전에는 외식할 때면 우리 부부는 신경이 곤두서 주변 눈치 보느라 죄인 아니 죄인이 되어야 했다. 줄기세포 시술 횟수가 늘어 가면서 조금은 부자연스러워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아 외식을 즐기는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갖게 되었다.

감기를 앓아도 “아파” 소리도 못 내던 석호가 어느 날부터 “머리가 아파요” “몸살 날 것 같아요” “목이 아파요” “아빠 사우나 가요” “머리가 많이 자랐어요. 깎으러 가요” 등등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정맥주사보다 척수강내 시술이 뇌쪽의 질환은 더 효과가 있다고 하여 3회 정맥으로 시술 후 척수강내 시술을 처음 하던 날, 석호를 달래느라 “석호야 조금만 참으면 아빠가 석호 좋아하는 과자 사줄 게. 뽀로로 사줄 게”라며 정상인도 하기 어려운 새우등 자세로 구부리게 하여 척수강내 시술을 받았다.

그날 저녁 석호는 “아빠 머리가 아파요” ”토할 것 같아요” 등의 의사표시를 했다. 엄청난 발전이다. 불과 3~4개월만에 말이다. 정맥만 시술할 때보다 정맥과 척수강내 시술을 같이 하니 훨씬 변화가 있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식사도 못해 안쓰러웠는데 집에 와서 12시간 이상을 계속 자던 일이 있었다. 척수강내 시술 1주일 후 우리 부부는 석호의 변화에 더 놀랐다. 눈빛이 살아나 개구쟁이 같았다. 궁금한 것이 많아졌고, 배고프다고 라면도 혼자 끓여 먹었다.

이전에는 누군가는 항상 함께 있어야 했지만, 이젠 차분해져서 일부 통제가 가능해졌다. 석호는 집에서 혼자 컴퓨터를 켜고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영상도 본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열어 스스로 해결한다.

석호는 여행 겸 정맥시술을 위해 해외로 신나게 다닌다. 첫 한두 번은 어딜 가는지, 왜 가는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던 석호가 세번째 줄기세포를 맞으러 갈 때에는 “아빠 줄기세포 맞으러 가요? 외국가요?” 한다.

처음 두세 번 갈 때까지 비행기를 타고도 가만히 못 있고 앞 좌석을 다리로 손으로 계속 툭툭 쳐대 앞 승객에게 불편을 주었으나 이젠 아주 점잖아졌다.

지금까지 척수강내 시술을 3번 했다. 척수강내 시술을 하고 나면 보다 확실하게 석호에게 변화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석호는 외출하는 엄마에게 김밥을 사오라고 한다. 미쳐 못 사온 엄마에게 “왜 안 사왔어요? 재료가 떨어졌대요?”할 정도로 상황 판단력도 생겼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했던 ‘만년 4살 아이’ 석호의 정신이 자라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석호는 8회 체험 후인 2018년 6월엔 엄마에게 “엄마 이 옷 깨끗이 빨아주세요” 한다. 사회성도 생긴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 가서 3년 전 ‘전쟁’을 치르며 굴과 칼국수를 먹었던 그곳에 다시 다녀왔다. 우리 네 가족은 언제 그랬냐 싶게 평온하게 식사를 하였다.

석호 동생도 형이 많이 점잖아져서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오는 길에 고향에 들러 석호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도 찾았다. 석호는 “할아버지, 할머니 석호가 왔어요”라고 인사말도 하였다. 우리 부부는 이런 변화가 얼마나 가슴 벅차게 반갑고, 행복한 일인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석호는 이렇게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석호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피하지도 않는다. 석호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반복해서 하는 행동도 없어졌다.

석호가 이렇게까지 좋아질 줄은 1년여 전, 줄기세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줄기세포 라정찬 박사님께 이 글을 통하여 우리 가족 모두 진정, 진정 감사를 드린다.

석호도 무의식에서는 라박사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다. 또한 바이오스타코리아 직원 여러분께도 아울러 감사드린다.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가족에게 주신 라정찬 박사님께 한가지 당부 말씀을 드린다. 우리처럼 아픔을 갖고 있는 수많은 환우와 그 가족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로 그것이다.

석호와 같은 처지에 있는 환우 가족분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참 많다, 이런 분들께도 의료혜택이 골고루 갈 수 있도록, 기회가 좀더 쉽게,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에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더욱 더 노력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예방주사 맞듯이 줄기세포 시술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꿈꾸어 본다.

석호와 같은 증상의 환우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들 석호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꼭 도움을 받으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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