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아흔 노모 마지막 길에 “평생 남 험담하거나 무시할 줄 모르고 사신 엄마”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지난 금요일(3월29일) 오후 2시 약간 지난 시각 전화가 울렸다. “상기야, 어머니 돌아가셨어. 하계동 을지병원이야.” 둘도 없는 친구 김종화 음성이다. 고교 동창인 그와 나는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도 함께 했다.
이날 저녁과 이튿날, 그리고 이틀 후 발인 때까지 한국기자협회 주최 세계기자대회에 참석한 아시아기자협회 회원들과의 오랜 약속이 있어 시간을 낼 수가 없을 듯했다. 마음이 바빴다.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저 마지막 영정사진이라도 뵙고 싶었다. 아직 빈소도 차려지지 않았다.
종화 형님께 간단한 인사밖에 못하고 빈소도 차려지지 않은 장례식장을 나섰다. 별세하신 당일은 인천에서, 거창으로 이동하던 둘째날, 그리고 상경하던 발인일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 속에는 ‘절친’ 모친의 별세에 대한 아쉬움보다, 빈소를 찾지 못한 송구함이 더했다. 그것은 일종의 체면치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아침 종화가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 어머니 빈소의 영정사진이야. 얼마나 점잖은 모습인지 몰라. 평생 남을 험담하거나 무시할 줄 모르고 좋은 면만 보고 칭찬해주시던 인정 많고 똑똑하던 우리 어머니를 이제는 더 이상은 볼 수가 없게 됐어. 학교 다니던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평생을 마음 고생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와. 울엄마 바다같이 넓은 가슴을 가졌기에 좋은 데로 가셨을 꺼야. 엄마 잘 가. 그리고 내가 엄마 찾아가는 날까지 아무 걱정거리 없는 하늘에서 편히 쉬면서 나를 기다려줘. 안녕”
친구의 문자에 눈시울이 붉혀진다. 70년대 후반 성남 태평동에서 잠실 시영아파트, 이어 구의동 댁에서 종화 어머님이 해주시던 따뜻한 밥과 시원한 배춧국 구수한 향이 코앞을 맴돈다.
◆ 정옥현씨 별세: 김병오(전 우정사업본부 과장) 종화(전 <한겨레> 부국장)씨 모친, 문희숙씨 시모=29일 오후 1시35분 서울을지대병원. 발인 31일 정오. (02)970-8444.
삼가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