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갈수록 진화, 버닝썬처럼···훔쳐보기·몰래찍기·물뽕 그리고

음란범죄 어디가 끝일까? 사진은 몇년전 적발된 나체 스트립쇼 장면

흥미, 그러나 억제 안하면 철창 신세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청와대 치안비서관 역임] 대학 다닐 때 장발단속 거셌다. 경찰관 피해 돌아다니다가 막 생긴 육교 건너 도망갔다. 계단 맨 아래서 한숨 돌리고 있었다.

우연히 벌렁 뒤로 누었다가 발견했다. ‘아, 이거, 웬 새로운 경지냐?’ 그때 한창 유행한 미니스커트 속. ‘야! 삼각이냐? 무슨 색깔이냐?’

올라가고 내려오는 여인의 팬티 놓고 내기 한다. 딱히 보고 싶다는 욕구는 아니다. 그저 그 나이 때 장난기. 해보는 짓거리다.

한두번 해보고는 시들해진다. 틴에이저 때 에피소드다. 성인으로 가는 과정의 통과의례다. 그걸로 끝낸다. 비행에 대한 억제다.

욕망을 억누르지 못 한다

몰래카메라가 유행이다. spy cam, hidden cam, 도찰(盜撮)이다. 범인은 단순한 호기심? 아니다. 도둑놈처럼 숨어서 훔쳐본다. 병이다. 범죄다.

scopophilia(절시증 窃視症). 이런 질환 앓고 있는 절시증자가 대부분이다. 정상인의 보통성욕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성욕이다. 성도착(性倒錯)의 하나다. 성적절시증 Mixoscopie라고도 한다.

타인의 나체, 배설, 성교 장면을 비밀리에 본다. 당사자 승락 없이 훔쳐본다. 성적 흥분과 만족으로 이어진다. 자위(masturbation) 한다. 사정한다.

스트립쇼 구경은 ‘목적 있는 보기’다

그렇다면 스트립쇼 보러 간다? 훔쳐보기 박스에 들어가 조그만 구멍으로 나체와 성기와 성교행위 본다? 이건 절시증 아니다. 상대방 의사를 무시하고 ‘몰래 보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그런 업소를 교외 한적한 곳에 모아 놓는다. 태국과 일본은 도심 유흥가 특정구역에 몰아넣어 관리한다.

지역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된 장소에서만 영업이 허용된다. 선량한 남녀노소의 오염방지 위해서다.

그곳을 가려면 ‘일부러’ 차타고 오염지대 찾아가야 한다. 우연히 들리게 됐다거나 거기서 쇼는 보지 않았다거나 하는 건 변명이다.

그런 사람은 의도와 목적 하에 대가를 지불한 고객이다. 그런 사람에게만 ‘허용된 보기’다. 마피아와 야쿠자를 비롯한 갱(gang)이 장악한다. 인간을 밀수해 밀매하는 trafficker 조직의 소굴이다.

평생 거기 한번 안 가고도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는 사람은 호기심이 강한 부류다. 그래서 쇼걸은 노 터치(no touch)! 성욕을 원거리 차단한다.

어렸을 적 경험의 연장

훔쳐보기와 몰래 찍기 즉 절시와 도찰은 비밀이니까 더 보고 싶어 하는 인간욕망의 발로다.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드는 절시(窃視)의 유래는 젖먹이 때의 경험에서 찾고 있다. 유아성욕(乳兒性欲)이다.

어린애는 자기의 성기를 갖고 논다. 곧잘 어머니에게 보여준다. 노출이다. 이 노출과 짝을 이루는 욕구가 절시라고 설명한다.

동양에는 절시증이 많다. 부모와 한 방에서 자기 때문에 성교장면을 보게 된다. 절시로 이어진다. “엄마! 어제 밤 가랑이가 왜 넷이야?” 묻기도 좀 그렇다. 기억창고에 저장해 둔다. 청소년기에 궁금증 재생된다. 흘끔흘끔 훔쳐본다.

서양은 노출증이 많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다른 방에서 자란다. 성교장면을 보지 못한다. 대신 내 것을 보여 주려는 노출이 생긴다.

고치기 힘든 병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7년 개봉작 <Rear Window>. 휠체어로 움직이는 주인공이 집 뒤쪽 창 통해 카메라 렌즈로 이웃 들여다본다.

신체의 부자유가 초래하는 무료함. 하는 일 없음을 달래려는 행동이 절시가 된 케이스다. 그만 두지를 못한다. 대상은 각양각색. 재미있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중독된다.

인간의 욕망 자체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병’이다. 절시증과 도찰증도 ‘본다’는 욕망의 정신질환이다. 스토킹, 강간,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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