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캄보디아 물 축제서 456명 참사

2010년 캄보디아 ‘비극의 축제’ 압사사고 456명 숨져

크메르 물 축제 <본옴뚝(Bon Om Touk)>의 마지막인 보트 경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섬 북쪽 코픽 다리로 몰려들면서 약 1000여명이 연쇄적으로 넘어졌다. 압사 직전의 주민들 얼굴에 죽음의 공포가 서려있다.

2010년 11월22일 밤 9시30분께 캄보디아 프놈펜과 다리로 이어진 코픽 섬에서 수 백명이 압사사고로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크메르 물 축제 <본옴뚝(Bon Om Touk)>의 마지막인 보트 경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섬 북쪽 코픽 다리로 몰려들어 약 1000여명이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서로서로 깔리면서 일어난 사고다. 이 사고로 456명이 사망하고 750여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들은 모두 캄보디아인들이었다.

축제의 함성이 가득하던 메콩강의 지류인 똔레삽강과 바싹강에는 주검들이 둥둥 떠다녔고, 미처 치우지 못한 주검의 얼굴에는 현지 관리들이 임시로 종이를 덮어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물 축제 의 마지막 날인 이날 코픽섬과 프놈펜 도심을 잇는 다리를 통해 100만 명의 인파가 섬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일부 시민들이 무엇엔가 놀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놀란 시민들이 서로를 깔아뭉개고, 일부는 강물에 빠지면서 수백명이 숨졌다.

사고가 터진 뒤 5시간 뒤인 23일 새벽 2시30분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고는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폴포트 정권의 대학살 이후 31년 만에 우리나라에 닥친 가장 큰 비극”이라며 “상처받은 동포들과 부상자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정부는 25일을 국가 애도일로 선포하고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으며, 사망자 가족들에게 장례비로 500만 리엘(1250달러), 부상자들에게는 100만 리엘을 지급하기로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우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3일 동안 본옴뚝이라는 물 축제를 연다. 이 축제 때 열리는 전통 배 경주를 보기 위해 매년 캄보디아 인구(1480만명)의 8분의 1인 200여만 명이 수도 프놈펜으로 몰려든다.

1963,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암살

1963년 11월22일,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가 타계했다. 그는 이날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저격당했다.

1961년부터 1963년 암살당하기 전까지, 3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직에 있었으며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자 최초의 가톨릭 신자로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 당시 연설 및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보여준 그의 정치적 행보 등을 통해 미국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In the long history of the world, only a few generations have been granted the role of defending freedom in its hour of maximum danger; I do not shrink from this responsibility. . . I welcome it. I do not believe that any of us would exchange places with any other people or any other generation. The energy, the faith, the devotion which we bring to this endeavor will light our country and all who serve it. . .and the glow from that fire can truly light the world.

And so, my fellow Americans. .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Finally, whether you are citizens of America or citizens of the world, ask of us here the same high standards of strength and sacrifice which we ask of you. With a good conscience our only sure reward, with history the final judge of our deeds; let us go forth to lead the land we love, asking His blessing and His help, but knowing that here on earth God´s work must truly be our own.”

“유구한 세계 역사를 거치면서 겨우 몇 세대만이 최악의 위기에 자유를 수호할 역할을 다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임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어느 국민이나 다른 어느 세대와 자리를 바꾸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과업에 기울이는 열정과 신념, 헌신이 우리의 조국, 그리고 조국에 봉사하는 모든 국민들을 밝게 비춰줄 것이며 거기서 나오는 찬란한 불꽃이 진정 온 세상을 밝혀 줄 것입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自問해 보십시오. 그리고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어 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손잡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십시오.”

1897, 명성황후 국장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중 발인반차도

1895년 10월8일, 명성황후는 당시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시에 의해 궁중에 잠입한 자객들에 의해 무참하게 시해됐다.

시해된 지 2년 만인 1897년 이날, 민비를 명성황후로 추존해 다시 그에 맞는 국장을 치렀다.
최선화 수습기자 sun@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