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아침 ‘악성’ 베토벤을 떠올리는 이유

독일화자 요셉 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가 1820년 그린 베토벤(1770~1827) 초상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인생 상담이라도 하고 싶어 필자의 일산 ‘덕산재’(德山齋)를 찾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들어보면 한결같이 삶이 괴로운 분들이다. 그런데 누가 삶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다 말 못할 고통을 이겨낸 끝에 고통을 탈출하고 마침내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다음에 맑은 향기를 발하는 법, 고통 없이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요행(僥倖)이다.

악성(樂聖) 베토벤이 주는 교훈이 있다. 누가 과연 베토벤 같은 괴로움을 겪었을까? 루트비히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독일이 낳은 불멸의 음악가다. 베토벤은 평생을 가난과 실연, 그리고 병고(病苦)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는 독일 퀼른시에 가까운 라인강가에 자리잡은 본의 누추한 다락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언제나 술에 취해 있는 테너가수였고, 어머니는 하녀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인 재능을 이용하여 신동(神童)이라고 떠들고 다니며 어린 베토벤을 밥벌이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 베토벤이 4세가 되자 아버지는 하루에 몇 시간씩 억지로 크라브상(피아노의 전신)을 치게 하거나 바이올린을 켜도록 방에 가둬놓는 등 음악공부를 강요했다.

베토벤은 어려서부터 이미 인생이란 냉혹한 싸움터로 내몰리고 말았다. 베토벤은 돈을 벌어야 할 궁리를 어린 나이에 걸머지고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보냈다. 그러다가 17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28세 청각을 잃는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청력을 잃어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은 음악인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자 그는 운명을 슬퍼하며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떠난 후, 그 곳에서 32세에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써내려간다. 그가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한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살다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죽으면 내 어머니가 기뻐할까?’ ‘이렇게 죽는 것이 어머니께 잘 하는 짓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베토벤은 유서를 써내려가면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깨달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써내려가던 유서를 찢어버렸다. 죽을 결심만큼 다시 한번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비록 청력을 잃었지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보겠다고 각오를 새기며 작곡에 몰두한 결과 귀가 들리지 않는 도중에도 ‘제2교향곡’ ‘오라토리오’ ‘감람산상의 그리스도’ 등 명곡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또 위기가 닥쳐왔다. 그의 말년은 매우 비참하고 절망적인 생활 그 자체였다. 음악가로 한창 명성을 얻고 있을 때 우울증 증세에다가 두 귀의 청각을 완전히 잃고 실연(失戀)의 아픔까지 겪게 되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음악을 계속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날마다 몸부림쳤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아봤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베토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코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때부터 또 다시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칠 줄 모르는 음악적 열정이 더 솟아올랐다. 성난 파도와 같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율(旋律)을 악보위에 적기 시작했다. 때로는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웅장한 선율을 작곡했다.

생애 최고의 걸작 일부는 완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마지막 10년 동안에 작곡한 것이다. ‘교향곡 제3번 영웅’ ‘피아노협주곡 제4번 운명’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 등은 모두 이때 탄생된 대작이다. 그리고 1824년 54세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걸작인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작곡했다.

베토벤이 마지막 교향곡 ‘제9번 합창’ 연주회를 지휘하기 위해 빈으로 갔을 때다. ‘9번 합창’의 초연(初演)은 베토벤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초연에서 직접 지휘를 하지 못하고 옆에서 악보를 넘기며 박자를 맞추었는데 연주는 대성공이었다. 관중들은 베토벤에게 아낌없이 커다란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박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단원 중 한 사람이 베토벤의 몸을 돌려 관중석을 향하게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 눈시울을 적셨다. 베토벤은 이렇게 그토록 긴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주옥같은 악곡을 만들었다.

베토벤은 마음속으로 굳게 외치며 어두운 운명의 벽을 깨트렸다.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가진 상태로 작곡을 했고,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파 음악의 선구자로서 불후(不朽)의 명곡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르고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꽃이나 열매에서 뽑아 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뽑아낸 향유(香油)다. 우리가 좋아하는 우황(牛黃) 또한 건강한 소에서 추출되는 것이 아니고, 병든 소에서 뽑아내서 해열, 진정, 강심제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괴테는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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