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새터민의 ‘하노이회담’ 관람기 “한반도 평화의 길은 반드시 열려야 한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엔=이정철 자유기고가] 지난 2월 28일 목요일은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이래 뉴스를 가장 많이 본 날이었다. 대개는 웹툰을 보거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한 핸드폰이지만 그날은 하노이의 소식을 실은 뉴스를 보기 위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하노이에서 오랜만에 성사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만남은 내게 중요한 이슈였기에 일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핸드폰을 열어 뉴스를 확인했다. 결과는 협상 결렬이었다. 협상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쉽지 않은 만남 후에 이렇다 할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의 협상 결렬은 내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일단, 북한출신이라는 배경으로 나를 지칭하는 단어에는 동포, 새터민, 탈북민 또는 북한출신 한국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탈북자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탈북자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 영어로 명쾌하게 ’North Korean Defector’이라 나왔다. 참고로 Defector는 탈당자, 배반자, 망명자 등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나는 탈당한 적도 배반한 적도 없다. 그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배고픔에 시달리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북한 주민이었다. 나는 이런 단어들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를 ‘한반도 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왜냐하면 분단 이후 서로가 금기의 땅으로 여기는 한국과 북한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이 계속되는 한 탈북자라는 ‘부여된 정체성’은 나의 삶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앞으로도 배고픔이 대부분의 ‘추억’이 될 삶을 살아야 된다.

그렇기에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평화로 가는 길에서 한 발짝 더 내딛기를 바랬고, 북한주민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기를 바랬다. 평화가 부재한 남북관계의 진전은 힘들어 보인다.

한국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 주민들과 북한에 있는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은 김일성 일가와 그 정부다.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에게 배고픔은 칼로리가 필요함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3만1000여명의 북한이탈 주민들도 북한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으로는 자유다.

이러한 고통을 겪어 온 사람들에게 TV에 보여지는 김정은의 웃는 얼굴은 달갑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분노를 일으킨다. 한 북한 인권운동가는 2018년 4월 27일 회담에서 웃으면서 냉면을 먹는 김정은의 모습에 분노했다. 실제로는 “역겹다”라고 한 걸로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만난 북한출신 친구들 중 몇 명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때마다 언론에 나오는 김정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한다.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때도 여러 명의 북한이탈 주민들이 하노이로 가서 시위를 했다. 그들에겐 북한정부는 고통을 상기시키는 촉매제다. 김정은도 예외는 아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으로서 한국에 와 처음으로 알게 된 북한정부의 실체에 대해 분노를 했다. 북한정부가 나와 같은 북한주민들에게 고통스런 삶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대안 없는 비판에 지치기도 했다. 분노할 수는 있지만 그 분노가 북한에 있는 주민들을 구할 수 있는가와 분단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다.

왜냐하면 나의 분노와 상관 없이 분단이 계속되는 한 북한주민들에게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취한 첫 걸음이 한반도의 평화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로 가는 길은 열려 있어 보인다. 기존의 선례들을 보면 협상결렬 후에는 본격적으로 상대를 비방하는 자세로 돌입하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Chairman Kim wasn’t prepared to do more but I’m still optimistic”라고 하면서 추후 협상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트럼프 또한 기자의 질문에 “Frankly, we’ll end up being very good friends with Chairman Kim and North Korea”라고 답하면서 김정은과의 협상 의지가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북한측 또한 등가교환의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다는 것만 언급했을 뿐이다.

희망은 필요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인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주민에게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다면, 북한주민들이 가족과 헤어지고 탈북자가 될 필요가 없게 될 수만 있다면, 냉면을 먹으면서 웃고 트럼프와 악수를 하면서 웃는 김정은과 영혼을 팔게 되더라도 손을 잡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을 위한 악수를 말이다. 분노할 권리는 북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들의 권리지만, 한반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비난의 대상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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