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특집⑧] 반일(反日) 치우쳐 중국 패권주의 못 봐

인민해방군을 사열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국가는 많지 않다.

[아시아엔=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방송문화진흥회 전 이사] 3.1운동은 그 자체로 세계사에 빛나는 독립운동이자 민주주의운동이지만 사망자 7500명, 중상 및 부상 1만6천명, 체포구금자 4만7천명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한국전쟁(6.25)을 제외한다면 근대 이후 우리 민족 전체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의 가치와 제도를 만드는데 가장 강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 역시 말할 것도 없다.

근대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 통치를 전제로 국가수준에서도 개인의 합의에 의한 자기통치(self-governance)라고 할 때, 3.1운동은 민족자각과 함께 민주주의 주체인 개인을 역사와 통치체제에 등장시키는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통치대상일 뿐이던 백성에서 동질적 인격체의 결합으로서의 민족인식을 확산시키고 수 백년간 계속된 차별화된 계급 및 신분구조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유를 실현할 근대 시민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3.1운동이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미친 의의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을 항일독립운동으로 협소화시키는 것은 3.1운동의 근본적 의의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3.1운동은 봉건왕조적 조선, 폐쇄적 조선, 그리고 중국에 사대(事大)하며 근대주권국가를 만들지 못한 조선체제를 극복해내는 근대화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지배의 극복은 물론이고 봉건 회귀가 아닌 봉건조선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신생독립국들과도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근대적 보편가치를 지향하며 민주공화제를 만들겠다는 염원을 담아내고 공화제적 정부를 만드는 운동으로 돌입한 것도 한국민주주의사에 남다른 의의를 갖는다. 따라서 3.1운동은 대한제국의 근대문명 개화를 계승하면서도 식민 지배와 봉건 조선을 지양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1919)와 대한민국(1948)을 만든 토대인 것이다. 그런 근대화운동이자, 반봉건 민주주의운동의 결과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의 성공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몇가지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3.1운동이 지향했던 민주주의 가치를 보편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실천이다. 첫째 과제는 당연히 북한에 온존된 봉건 및 전체주의와 대결하여 극복하는 일이다.

3.1운동의 중심지역이었던 한반도 북부의 북한이 아직 민주주의 초보단계조차 나가지 못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예외적 성공과 달리, 민족 절반이 사는 북한에 지구상 최악의 체제와 봉건조선적 세습 전체주의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오늘까지 계속된 것에는 대한민국의 책임도 작지 않다.

절반의 민족에게 3.1운동 당시 일본군국주의를 능가하는 문명파괴와 민족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을 3.1운동적 가치와 행동으로 책임을 다하며 함께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 역시 명백한 현실이다. 북에 살고 있던 사람까지 남하하여 만든 성공적 한국민주주의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민주기지(民主基地)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민주주의 확산투쟁을 다하지 못한 결과다.

둘째, 3.1운동에 대한 평가가 특정국가인 일본을 대상으로 한 항일운동에 머무는 것도 3.1운동의 보편적 성격을 훼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군국주의 혹은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반일(反日)주의로 매몰되는 현상이 그것이다. 3.1운동적 민주주의가 보편가치의 지향이 아닌 특정국가에 대한 반대로만 집약되는 것은 실질적이고 명백한 당면의 위협이 되어온 광복 이후 지난 70년간의 또 다른 주변의 전체주의와 독재, 혹은 중국과 같은 또 다른 패권주의의 문제를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3.1운동이 보편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전체주의자는 물론 중국공산당 정부의 패권에 대한 대응도 거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예로서, 위안부 문제에 사죄 요구는 있어도 중국의 침략전쟁(6.25)에 대한 인식과 사죄 요구는 없었다. 또 서해 어장(漁場)과 항공식별구역 유린, 사드(THAAD)배치를 둘러싼 제재 및 롯데그룹 등 한국기업에 대한 유린이 사회문제가 안 되는 것 등은 주권독립의 문제를 특정국가를 대상으로만 불균형적이고 비보편적 방법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민주주의는 국가(정부)의 역할과 크기에 대한 민주적 검토가 늘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라는 조직으로 각 개인을 귀속시키고 국가라는 집단적 결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가치추구와 다양성은 늘 구속되거나 침해될 수 있기에 정부 범위의 적정성을 조정하는 것은 민주발전에 핵심적 사안이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한 것이지 다수적 결정이 개인자유와 창조성, 다양성이 침해되는 것은 민주주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정치적 결정이란 강제적이고 집단 전체를 획일적으로 구속한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결정하는 영역 확대와 재정 확대는 자유 영역과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좌우하는 정부와 팽창된 정부재정의 사용권을 장악하려는 선거대결 및 정치투쟁의 확대는 결국 포퓰리즘으로 가며 많은 나라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실패를 초래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민주주의는 어려움을 뚫고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해온 과정을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민주주의란 명분으로 펼쳐지는 선동과 포퓰리즘적 선거, 그리고 그런 선거결과로 만들어지는 정부를 대상으로, 어떻게 시민의 민주적 규제를 작동시키며 민주주의 성숙을 개척해갈 것이냐의 방안을 찾는 것이 3.1운동 정신의 계승이기도 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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