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흩어진 민심’ 당신만이 하나로 통합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8개월 만에 열리는 트럼프·김정은의 ‘베트남 담판’이 이번에는 성공할요? 두 사람은 1차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토대 위에서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주고받는 ‘손에 잡히는’ 성과물을 도출하는 실행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는 중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2018년 초, ‘핵단추 설전’을 벌이며 전 세계를 전쟁 위기론으로 몰아넣다 벼랑 끝에서 손을 잡고 180도 극적인 관계 변화를 이룬 두 사람. 그들이 ‘세기의 브로맨스’로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 지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지에 세계의 이목이 다시금 쏠리게 되었다.

과거 베트남전 당시 미국과 총부리를 겨눴던 적대국 사이였던 두나라. 하지만 양국이 미군 유해송환 등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 경제성장을 이룬 베트남을 무대로 북미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할 ‘핵 담판’의 막이 오르는 것이다.

문제는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합의사항들 가운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추가 조치와 이에 대한 보상 격인 ‘북미간 새로운 관계 수립’ 그리고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체제 구축’에 관련한 미국의 상응 조치들을 어떠한 순서와 조합으로 짜맞추고 배열해 전체적인 ‘북한 비핵화-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로드맵을 그려내느냐가 관건이다.

북한이 취할 ‘+α’의 조치로는 핵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와 해외 반출, 김 위원장이 이미 지난해 약속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엔진 시험장·미사일 발사장에 대한 외부 전문가들의 사찰·검증 등이라고 한다.

미국의 상응 조치로는 종전선언을 넘어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와 평화협정 체결 논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과 맞물린 제재 완화, 대북투자 등이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복심(腹心)’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지난 17∼19일 2차 방미를 모멘텀으로 북미가 서로 ‘긍정적인 신호’를 발해오고 있어 아마 빅딜 성사에 대해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미정상 간에 직·간접 소통을 통해 큰 틀에서 교감을 이룬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말 진리는 오묘(奧妙)한 것이라는 묘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해에서 은혜가 생기고, 은혜에서 해가 생긴다”(恩生於害 害生於恩)는 진리다. 정말 미국과 북한, 중국 그리고 베트남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북한과 미국은 6·25전쟁을 치룬 원수지간이다. 중국도 6·25때 미국과 전쟁을 치룬 당사자다. 그리고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사망자 47만 명, 월남 정부군 희생자 13만 명, 미군 희생자 27만명이 나왔다. 6·25때 양쪽 희생자는 이보다 덜하지만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이 사실이다.

6·25 때 미군 사망은 5만 4246명, 부상 10만 3248명, 실종 8177(총 약 16만 6천명) 발생하였다. 반면 북한군은 사망 29만 4천명, 부상 22만 6천명, 포로 11만 3천명이었다. 중공군은 사망 18만 4천명, 부상 71만 6천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냈다.

베트남과 중국도 원수지간이다. 중국이 1979년 베트남을 침공함으로서 벌어진 베트남-중국전쟁에서 중국측 6900명, 베트남 측 2만명의 전사자를 낸 채 베트남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 개최지 베트남도 미국과 중국이 원수지간이다. 그러니까 당사자 미국과는 베트남, 중국, 북한이 모두 원수지간이라는 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금번 베트남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원수들이 원수의 나라에서 벌리는 ‘원수들의 은혜잔치’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월 3일 CBS 인터뷰에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 국가 중 하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다”며 “확실히 우리가 비핵화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경제개발 모델을 베트남 모델로 이끌기 위해서 아마 베트남에서 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원수와 은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수에게서 은혜를 발견하면 은인이 되고, 은인에게서도 원망을 발견하면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이제 원수의 나라끼리도 ‘은혜잔치’로 갚는 세상이 되었다. 하물며 우리 남북간, 여야간, 지역 간, 사상 간, 개인 간에도 혹 맺힌 원한이 있거든 풀고 화합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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