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거룩한 사랑’ 박노해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성聖은 피血와 능能이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손에 피를 묻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끓였다
나는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를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