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유럽] 이탈리아에 휘몰아치는 ‘오성운동’과 ‘리그당’
포퓰리즘의 기원은 어디인가? 어떤 학자는 로마제국의 의회를, 또다른 한편에선 미국 건국 이후 확산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흐름에서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의회이다. 본래 국가운영에 국민의 뜻을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의회정치는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을 앞세워 자기 자신과 정파의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들에 의해 오염되는 일이 다반사다. 바로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매거진 N>은 아시아 각국의 정치현장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을 살펴봤다. <매거진N> 11월호 스페셜 리포트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초 집권과 2016년 7월 쿠데타 이후 권력 강화 과정에서 그가 포퓰리즘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추적했다. 또 고대로마 이후 의회정치의 산실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현재 연립내각의 ‘포퓰리즘 노하우’를 살펴본 독자들은 파키스탄, 이집트, 필리핀의 정치현실과 포퓰리즘과의 함수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T강국으로 강력한 규범에 의해 통제되는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선 포퓰리즘이 과연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이 나라 최고 매체인 <스트레이트타임즈> 기자출신인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전 회장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봤다. <편집자>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Alessandra Bonanomi) <아시아엔> 기자] 2018년 3월 실시된 총선에서 이탈리아는 포퓰리즘 정부를 선택했다. 디 마이오가 ‘5성운동’이 이끄는 정당과 살비니 주도의 리그(LEGA)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들 두 정당은 이탈리아 총선에서 각각 경쟁해 5성운동이 33%, 극우성향의 리그당은 17%를 각각 얻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실업자 1명당 700유로의 기본 수당을 공약한 5성운동을 적극 지지한 것이다.
애초 이들 두 정당은 직접 민주주의, 반부패 정책, 녹색 경제 등의 면에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점이 많아졌다. 이들은 유럽연합 탈퇴의지를 밝혔으며 서구의 극우파 즉 푸틴, 트럼프 등과 상당히 공통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무엇보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선전에 열을 올리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다.
살비니와 디 마이오는 페이스북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콘텐츠를 대량 살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 및 경쟁후보와의 민감한 차이점을 유권자들이 즐겨 쓰는 언어로 소개하면서 주도권을 잡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상대방의 음모론을 거론하며 유권자들의 동조를 이끌어낸다. 그들은 이민정책 및 자신들에 대한 반대파를 ‘심장이 뚫린 사람들’로 매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 두 정당은 선전·선동을 위해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동원하기도 했다. 수백만명의 팔로워가 있는 당 자체 블로그와 SNS 계정뿐 아니라 당이 운영하는 ‘독자적인 뉴스 시스템’도 갖고 있다. 한 예로 이들 정당이 운영하고 있는 ‘테즈 테즈’ 등의 사이트는 가짜뉴스를 10분 단위로 생산·유포하며 유권자들을 현혹했다. 이들 가짜뉴스 가운데는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이민자들을 데려오는 인신매매범들에게 미국이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과 “버락 오바마가 시리아 정권을 전복시켜 중국이 석유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과 같은 허위사실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탈리아에서 정치인과 언론인에 대한 각종 위협과 협박이 그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들 두 정당은 언론인, 이민자, 유럽연합, 민주당, 판사 등을 적으로 간주하고 대국민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정당이 이끄는 연립내각은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이탈리아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두 정당의 정치적 합의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하니문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말하기 쉽지 않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것도 그들의 거래를 깨지는 못할 것 같다.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현 정부의 모순을 지속적으로 비판하지만,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들 연립내각이 이탈리아가 직면한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부패와 불평등 그리고 주요 현안들에 대해 이들이 내세운 변변한 대책이나 법률안은 거의 없다. 극우파와 시대착오적인 5성운동의 결합은 역설적이지만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시대이기에 가능했다.